사랑으로 이루어진 남녀가 가정을 꾸몄다. 한 두 해가 지나는 동안 서로 이해하고 나를 상대방에 맞추려 했던 결혼 전, 신혼 초의 배려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사소한 일로 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는 동안 돈과 성 문제, 시댁과 친정문제, 도박과 과음문제 등으로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 가정 중 한 가정이 그렇다는 것이고, 신혼 두 가정 중 한 가정이 결혼 3년내에 이혼 전야에 놓이고, 한 대도시 한인사회에서는 한달 평균 10쌍이 이혼하고 있다. 덩달아 60대의 황혼이혼도 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돌아서도 남이요, 점을 찍어도 남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남편이 아내를 버릴 것인가. 이것은 아내와 남편이 함께 지혜로 풀어야 할 과제이다. 이성간의 사랑은 성과 에로스(정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 식어가게 되어있고 이 식어 가는 사랑을 메꾸어 주도록 마련돼 있는 것이 아가페(성실과 이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즘의 아내와 남편은 무엇이 참 사랑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적도 없고, 누군가가 가르쳐준 적도 없다. 그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말만 듣고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철모르던 20대에 한 결혼 약속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은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젊은이들, 비와 눈보다 더한 폭우와 태풍에 대해 짐작이나 했겠는가.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는 징표는 서로가 마주 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초점을 바라보며 함께 동행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좁게는 가정, 넓게는 사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공주(公主)와 백마를 탄 기사(騎士)의 환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부부의 사랑은 식물 같아서 서로 양지 그늘을 가려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의 결혼이 ‘아가페’라는 당위성(當爲性·to be)없이 ‘에로스’라는 풋사랑(puppy love)만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생각부터 오류가 있는 것이다. 결혼생활의 행로는 언제나 직선으로 뚫린 평탄한 고속도로만은 아니다. 굴곡 된 언덕과 내리막 길, 신호등 없는 교차로, 비포장 도로, 일방 통행로, 데드 엔드, 속도 제한 등 수도 없이 여러 고비를 넘어야 한다. 그때마다 전후 좌우도 살펴가며 양보도 하고 책임도 저야 한다.
그래서 결혼 생활을 하다보면 상하 좌우 가족이란 인파에 둘러싸인 자신의 처신에 고민하고 고독을 느끼고 그러다가 한눈을 파는 자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문으로만 듣고 있었던 ‘사랑은 화려한 오해’요, ‘결혼은 참혹한 이해’라는 체험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특히 ‘아가페’에 취약한 젊은이들이 더 그렇다는 얘기다.
부부간의 다툼도 그렇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 사이에서 갈등은 일종의 예고된 경종이다. 문제는 다툼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끄느냐, 파괴적 방향으로 이끄느냐에 있다.
서로 대화를 나눴다고 하지만 상대방을 탓하는 감정의 폭발이지 대화가 아니다. 그래서 부부 싸움은 둘 다 피해자로 끝나고 만다.
부부 싸움은 승자 패자의 싸움이 아니라 나도 이기고 상대도 이기는 승자 승자의 싸움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을 인(忍)자를 속으로 몇 번 되풀이하고 목소리를 낮추고 이렇게 상대에게 얘기해 보자. ‘듣고 보니 당신 말도 옳소이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내가 옳고 억울하더라도 그 순간은 그냥 넘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하거나 내 주장을 펼치면 별다른 충돌 없이 평온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발적인 승리보다는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는 것이 부부 사이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부부간의 인간관계는 고무줄의 원리와 비슷하다. 너무 세게 잡아당기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줄이 처지게 마련이다. 사람이란 누구나 상대가 너무 옥죄어오면 피하고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배우자 다루기 ‘4L’이다. 그 내용은 사랑(Love), 한계 설정(Limit), 정신적 독립과 이별(Let them go)그리고 느슨한 간섭( Loose integration)이다.
참기 힘든 고통으로 이혼의 문턱에서 번민하다가 마음을 돌린 사람도 있고, 용서하기 힘든 불륜까지도 인생의 눈(雪)과 비(雨)로 받아들여 같이 해로한 부부도 있다. 어름짱 같은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마음을 돌렸을 때 가장 먼저 따뜻해지는 사람은 그 자신이다.
이런 저런 연분(緣分)으로 만나 자식 낳아 키우고 산전 수전 다 겪으면서도 큰 탈없이 해로(偕老)하다가 헤어지면서 「내 먼저 가 옆에 당신 자리 잡아 놓으리다 …」, 「내 뒤 따라 갈 테니 먼저 편히 가 계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결혼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성공하고 내세에서도 좋은 연분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분들이다.
/ikhchang@aol.com
철학박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