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상대방을 보고 신체중 눈, 코, 귀, 몸매 중 어떤 부위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말하라고 하면 사람마다 그 답이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의 눈, 입술, 몸매를 말할 것이다. 요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 인기중의 영화 ‘툼 레이더’ 에 나오는 주연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그 매력적인 입술을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성훈이 좋아하는 여자의 신체부위는 좀 다르다. 성훈은 얼마전 한 모임에서 유희란 여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유희를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결혼을 안하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성훈이는 했다. 유희의 얼굴은 평범한 직장 여성으로 보였다. 특히 사람의 시선을 끄는 그런 얼굴 표정은 아니었다. 성훈은 무관심하게 유희 앞에 앉았다. 성훈은 무심히 유희의 무릎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빛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유희의 손은 귀여웠다. 하얀 피부에 조그맣고 갸름하고 가지런한 손. 저 손으로 피아노 건반 위를 백조처럼 춤을 추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아름답고 귀여웠다. 그런 손을 덥석 한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성훈의 삶에서 단 한번만 해보고 싶은 일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유희의 손을 잡아보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그 손을 잊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연말 동창회 모임 연락을 받았다. 그 동안 서로 가까운 지역에서 생활하면서도 무엇에 쫓기다 만나지 못한 선후배들과 악수를 하고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불쑥 나타난 그 신비의 손을 가진 유희.
안녕 하세요, 선배님.
선배라니요?
선배 언니가 성훈씨 이야기를 해줘서 알았어요.
그 분이 누구 신데요?
도서학과 나온 미셀 조, 잘 아씨잖아요.
네, 그 선배님 오늘 안 오셨어요?
유희는 그 아름다운 손을 성훈이 앞으로 쑥 내밀었다. 성훈은 크리스털을 만지듯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순간 일체의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지는 느낌 속에 몽롱해졌다. 유희의 따뜻한 체온과 마음이 전해오면서 얼었던 성훈의 체온이 눈 녹는 듯 했다. 성훈은 그때 새롭게 탄생하는 희열을 맛보았다. 성훈은 마음 속으로 짧은 탄성을 울렸다. 정말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성훈의 가슴에 상처를 만들었다. 아니 그것은 횟 칼로 난도질을 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장미가 아름답고 향기롭다고 하지만 눈물을 짜내는 가시가 있다는 것을 어찌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방금 들어온 태진이가 그 아름다운 유희의 손을 꽉 잡는다. 태진. 그는 이곳으로 유학 올 때부터 바람둥이로 소문난 녀석이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용모, 경제적인 여유까지 있어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자신만만하고 파트너가 바뀌는 것도 특징이었다. 오늘은 어디서 만났는지 금발의 여인을 데리고 왔다. 그런 녀석한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손을 맡기고 있다니, 당장 손을 놓게 해야겠다 면서도 성훈은 아무런 행동을 못하고 있다. 성훈은 유희 표정을 살핀다. 유희는 이야기를 하면서 잔잔한 웃음까지 준다. 성훈은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손이 망나니 같은 녀석한테 빼앗길까 불안과 불쾌감이 솟았지만 무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유희와 약혼한 사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서로가 알고 지내는 것도 아니다. 오늘 단 두 번째 만났고 내가 유희의 손을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 유희를 만난 후 선배한테 유희의 전화 번호를 좀 알려달라고 그렇게도 부탁했는데 선배는 그 말만 나오면 화제를 바꾸면서 전화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알아서 즉시 연락을 준다고 한 것이 한 계절이 지나갔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기저기서 일어나 중앙으로 걸어나가 서로 손을 잡고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성훈이 유희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싶다는 마음에서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태진이 녀석이 언제 왔는지 유희 앞에 섰다.
유희씨, 저와 춤을 추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죠.
유희는 성훈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태진의 손을 잡고 중앙으로 걸어나간다. 성훈이 불쾌하고 속이 끓어 얼굴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주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성훈이의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는 아픔을 맛보고 있다. 그 아름다운 손. 성훈이 가장 소중히 생각해 왔던 손이...... 유희는 태진이와 춤을 추면서 틈틈이 성훈을 바라본다. 유희의 수정같이 반짝이던 눈빛도, 잔잔한 미소도 다 성훈이 한테는 지금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모두들 떠들고 춤을 추고있지만 성훈은 술만 마시고 있다. 남자들은 유희하고 춤을 추기 위해 온 것 같았다. 유희는 음악이 끝나고 테이블로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춤만 추고 있었다. 한참 무드가 무르익어 갈 때쯤 의자로 돌아온 유희에게 성훈은 춤을 추자고 했다. 유희는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성훈의 손을 잡고 중앙으로 나갔다. 성훈은 옹졸해도 좋고 치사하다고 해도 좋았다.
유희씨, 다른 남자와 춤을 추지만 손을 잡는 춤은 추지 마세요.
왜요?
제가 유희씨의 손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그러세요? 그렇게 하죠.
유희씨, 전 유희씨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사랑을 고백했는데 어찌 아무런 표정이 없을까? 내 말이 잘못 전달되었나. 음악 소리에 잘 듣지 못했나. 성훈의 마음은 좀 불안했다. 다시 말을 할까 생각하면서 성훈은 유희의 따스한 손을 잡고 영원히 놓지 않을 것처럼 홀 안을 빙빙 돌고 있다. 동창회 파티는 자정이 넘어 끝이 났다. 모두들 술과 춤에 취해들 있었다. 성훈은 유희의 차 있는 곳까지 따라갔다.
성훈씨, 오늘 저녁 참 즐거웠습니다. 저에게 사랑을 고백 하셨죠? 그 말 오래 간직하고 싶네요. 그렇지만 전 결혼하여 아이가 있어요. 성훈씨,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세요.
유희는 손을 내밀었다. 아름답고 귀여운 손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는데 벌써 다른 남자의 손안으로 갔다니. 성훈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싶었다. 아름다운 손을 태운 차는 무정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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