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부간의 대화에서 “당신 어머니란 말을 가끔 듣는다. 결혼할 때까지 서로 사랑하고 사랑했기에 결혼을 했다는 사람들이 “당신 어머니, “당신 식구 라고 한다면 그들은 과연 부부인가 타인인가. 사랑해서 결혼했다면 자기가 사랑하는 당사자의 배경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부부 화합의 대전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시댁과 친정 사이에 균형 감각을 잃고 시댁 식구 욕하고 “시(侍)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는 며느리가 친정 식구는 또 얼마나 챙기는지 듣기도 하고 또 보기도 한다. 그런 집에 가보면 예외 없이 벽은 고사하고 냉장고 문에는 온통 친정 식구 사진 일색이다. 시부모나 시누이와도 사이가 좋을리 없다.
부부 사이란 “모난 돌이 서로 부딪치고 깨져 차차로 둥글둥글해지는 것이고, 고부(姑婦-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란 “모난 돌이 서로 부딪칠세라 조심하면서 차차로 가까워지는 것이다.
우리 나라 가풍(家風) 중에는 “종갓집 며느리는 잘 익은 과일 하나만 보아도 항상 조상님 생각부터 한다는 시어머님 말씀이 있어왔다. 이 말을 듣고 살아온 그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같은 얘기를 며느리에게 한다. 한 집에서 3대가 같이 살아도 큰소리 없이 오순도순 지낸다. 첫째로 서로 마음을 열고 둘째로 서로 허물을 덮어 준 넉넉한 마음씨의 응답이었을 것이다.
마음 열기 : 미국 속담에 “한 부엌에 두 여자는 필요 없다 말이 있고, 우리 나라에 없는 ‘장모의 날’이 미국에 있는 것을 보면 미국인 가정에도 꽤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장모와 사위 사이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고부 갈등의 원인은 본질적인 면에서 ‘주역(主役) 다툼’과 ‘세대(世代) 차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고생고생 일궈놓은 가정에 ‘무임 승차’한 며느리가 고마워하고 순종하기는커녕 살림의 주도권과 아들을 독차지하려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 입장에선 남편과 결혼한 이상 독립적인 주부로서 주역 노릇을 하고 싶고 또한 바랜 흑백 사진과 같은 시어머니의 낡은 생각과 사사건건 간섭을 받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말이 있다. 시어머니는 덮어놓고 며느리가 미운 것이 아니며, 며느리도 공연히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서로가 그럴싸한 이유가 있고 까닭이 있다. 서로의 마찰이나 오해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바꿔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것은 조선조 초기 때 방촌 황희(黃喜) 정승의 일화 중 “둘 다 옳다는 양시론(兩是論)이다. 안채에서 딸과 며느리가 다투다가 황 정승의 훈시를 받았다.
부인 : 두 사람의 잘 잘못을 가려주셔야지 며느리와 딸 둘이 다 옳다고 하시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희 : 듣고 보니 부인의 말도 옳소이다. 왜 그랬을까. 잘잘못을 직접 지적하는 것 보다 스스로 제 잘못을 깨우치도록 마음의 길을 터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부갈등의 경우 중간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은 어머니의 아들이자 아내의 남편인 당사자이다. 이 경우 당사자는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균형감각을 잘 취하는 것이 갈등의 심화를 방지하는 길이다. 최근 고부갈등 속에 아들들의 경험담을 엮은 「내 속 썩는 것 아무도 몰라」라는 책자가 나왔다. 저자는 서문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절대로 한쪽 편을 들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지겟다리 한쪽이 무거우면 그 지게는 쓰러지게 마련인 것과 같다.
허물 덮어두기 : 우리의 고부간은 서로 인상을 써가며 단점만 들추고 장점을 말하는데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인색하기에 펴야 할 가정이 펴질 못하고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히포크라테스는 인상쓰는 병을 가장 고약한 가정의 전염병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사람이기에 역지사지 바꿔 생각을 하면 피장파장이다. 나를 내세울 것도 없고 남을 내리 세울 것도 없다. 누구나 장점과 함께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서로 비교할 우리도 못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인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두고 좋은 점만 얘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조선조 명종(明宗)때 재상인 향일당(嚮日堂) 상진(尙震)은 도량이 넓고 관대하여 남의 흠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사랑방에서 한 손님이 다리 하나가 짧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자, 상진 대감이 “다리 하나가 짧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다리 하나가 길다고 말함이 좋소 하고 훈계를 했다. 단점을 덮어두고 장점을 보라는 심오한 가르침이다.
그런데 요즘 친정어머니와 딸 사이에도 거북 스러운 일이 늘고 있다. 딸의 말로는 며느리는 불편하다며 딸인 나에게만 귀찮게 일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불쑥 찾아갈 테니 기다리라거나, 어디에 갈 테니 데려다 달라는 것이 그 예의 하나이다.
고부간에는 격을 두고 지킬 것을 지키지만 모녀간에는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오히려 사소한 일에도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가까울수록 모녀간의 도리를 서로 지켜야 하지만 나이 들어 편협해지기 쉬운 어머니를 딸이 더 애정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6, 70 평생을 생의 비바람 맞으며 이제 연하고 약해져 서운한 게 많아진 어머니다. 나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되고 시어머니가 될 자신을 생각하면 순간순간 눈이 감겨지는 것이 인정이 아니겠는가.
고부 사이란 “모난 돌이 서로 부딪칠세라 조심하면서 차차로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고 나면 새벽 안개가 모든 추한 것을 덮듯이 가화만성(家和萬成)을 위해 그렇게 안개같이 살수는 없을까.
/ikhchang@aol.com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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