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침공작전에서 최대의 화제를 모았던 제시카 린치 일병 스토리의 베일이 서서히 벗겨지고 있다. 사실 제시카 일병 스토리에 대해서는 그동안 의문점이 많았으나 본인이 일체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신문에서도 진상을 제대로 파악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주 그녀의 책이 나오고, TV에서 인터뷰하고, 영화까지 나오자 ‘제시카 일병 스토리’에 칠해졌던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일요일 밤 9시에 방영된 NBC-TV의 ‘제시카 일병 구출작전’은 사건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모든 스토리를 종합해 분석해 보면 제시카 일병 스토리는 미군 고위층에서 과잉 포장해 만든 작품이고 제시카는 전혀 영웅이 될 자격이 없는 겁 많고 순진한 여군 사병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히려 영웅은 제시카가 아니라 여군 로리 피스테와일병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운전대를 잡았던 로리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무릅쓰고 제시카와 도디라는 남자 군인을 실은 채 나시리아 시내를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모든 남자 군인들이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고 야단인데 로리는 시종일관 침착하게 상황에 대처했으며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비장한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 ‘블랙호크 다운’과 비슷한 상황 전개다.
한마디로 영웅이 바뀌었다. 제시카가 아니라 로리가 뉴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어야 했다. 군 고위당국이 이 전투의 영웅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안 것은 7명의 포로가 구출되고 이들로부터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부터 인 것 같다. 그리고 군의 엄청난 실수로 507정비중대가 비극을 당한 것을 알게 되자 유야무야 파묻어 버린 것이다.
제시카는 독일병원으로 이송된 후 사람들이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한 자기를 ‘영웅’(Hero)이라고 부르는 사실에 대해 매우 당황했다고 실토하고 있다. 그녀는 다른 동료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용감하게 싸우다가 숨졌는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자신이 ‘영웅’으로 대접받기에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제시카 자신은 강간까지 당했었기 때문에 기자회견을 극도로 피했던 것 같다. 또 기자회견을 하면 군의 작전 실수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전쟁에서는 종종 영웅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국민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과잉 포장된 작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토니 커티스가 주연한 ‘이오지마의 영웅’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미 해병 전사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로 불리는 2차 세계대전의 이오지마 전투는 미 해병들이 이오지마의 산언덕에 성조기를 꼽는 장면이 심벌이다. 전투에서 싸우지도 않은 어느 사병이 우연히 성조기 꼽는 현장을 지나다가 거들게 된 것이 사진기자에게 찍혀 전국 신문에 보도되고 이로 인해 하루아침 ‘이오지마 전투’의 영웅이 된다. 본인은 나는 절대 영웅이 아니다라고 우기는데도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그를 영웅으로 떠받든다. 양심의 가책에 못이긴 이 해병은 나중에 우울증에 빠진다. 제시카 일병의 스토리는 ‘이오지마의 영웅’의 재판이다.
제시카의 최근 TV 회견을 살펴보면 그녀가 겪는 고민이 어떤 것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제시카는 자신이 영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도 영웅으로 떠받들어져 밀려가고 있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괴롭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다. 더구나 싸우다 죽은 동료들의 일부 유가족들이 제시카가 영웅이 되고 책으로 수백만달러를 벌게 되자 제시카는 시체를 밟고 돈을 벌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어 그에게도 적지 않은 짐이 될 것 같다. 제시카의 오늘은 그 날, 그 시간,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잡은 행운일 뿐이다. 만들어진 영웅이 얼마나 괴로운 존재인가를 보여준 것이 바로 제시카 일병 스토리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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