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저녁. 집 근처에 있는 마켓에 장을 보러 갔었는데, 늘 그곳에 있던 그는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의 처마 밑에 늘 웅크리고 앉아 있던 그. 내겐 조그마하고 누추하게 보이던 그 공간이 그에겐 몸을 누일 수 있는 안식처였을 텐데 오늘밤은 어디에서 헤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괜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잠시 동안 LA 근교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짧은 시간 동안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에 참 많은 경험들을 자처했었던 것 같은데, 그 중에서 하나는 매주 목요일에 할리우드에 있는 한 선교단체에 가서 Homeless People들에게 저녁을 나누어주었던 일이다.
사실 이 일은 나의 수 많은 편견들을 깨뜨려 주기도 했다. 가령, 할리우드라는 동네엔 미국의 유명한 배우들이나 부자들만 살 것이라는 막연한 나의 생각과 달리 그 곳에서 나는 매주 수 많은 Homeless People들을 대면했고(사실 시에선 우리가 하는 일 때문에 할리우드라는 시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준다며 장소를 이전 할 것을 계속해서 요청해 왔었다), 그 선교단체의 리더격인 목사님 부부는 남편은 흑인이었으며, 아내는 백인으로 피부색깔에 대한 편견을 아무리 뛰어넘으려 해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나에게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큰 계단을 하나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수 많은 봉사자들 가운데 섞여 있었던 자그마한 동양 여자인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동양철학에 대한 많은 지식들을 쏟아 놓았던 몇 몇 Homeless들을 통해 그들 중에는 상당한 지식! 을 갖춘 이들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이 일을 떠올릴 때 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앞서 얘기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모든 배식준비를 마치고 둥글게 서서 서로의 손을 잡고 기도할 때 마다 강한 어조로 말씀하시던 목사님의 말씀이다. 그는 매주 똑같이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는 Homeless People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Homeless의 모습으로 나타난 예수님에게 저녁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 말을 마치면 우리는 마치 마술에 걸린 듯 최고급 호텔의 웨이터, 웨이트리스가 되어 마약과 찌든 때로 냄새가 나는 그들에게 성큼 다가가 정성을 다해 대접을 하곤 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가족과 친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을지 모르는 아기 예수에게 드릴 선물 하나쯤 더 고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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