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노믹스’라는 말을 붙이기 시작한 것은 레이건 때부터인 것 같다. ‘서플라이 사이드’ 경제학으로 불리기도 하는 ‘레이거노믹스’는 그 내용은 잘 몰라도 이름만은 누구에게나 친숙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주드 워니스키는 ‘레이거노믹스’ 탄생의 주역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월스트릿 저널 논설위원이었던 그는 1978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The Way The World Works)라는 책을 썼다. ‘공급 위주’ 경제학의 원리를 풀어쓴 이 책은 ‘레이거노믹스’의 산파로 평가받고 있다. 레이건 자신도 “우리가 만든 경제 모델은 주드 워니스키가 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의 주장에 근거를 둔 ‘공급학파’는 경제 발전에서 중요한 것은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 사회에서 경제적 수요는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늘 공급 부족이 문제였지 수요가 모자라 문제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기근으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은 식량에 대한 수요 부족이 아니라 공급 부족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려면 공급을 늘리는 길밖에는 없다. 공급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품의 생산자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세금을 낮춰야 한다는 게 ‘서플라이 사이더’들의 주장이다.
레이건은 집권기간 두 차례의 과감한 감세 조치를 취했다. 당시에는 ‘부자를 위한 세금 감면’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으나 이제는 그것이 80년대와 90년대 미국 번영의 기초를 놓았다는 게 정설이다. 그 후 감세 정책은 공화당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에 반대하는 인물은 당의 주류 진영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됐다. 선거 공약으로 “내 입술을 읽으시오. 세금 인상은 없소”(Read my lips. No New Taxes.)를 내건 아버지 부시가 민주당에 굴복, 이를 번복했다 낙선 은 물론 당내 골수들과 등을 진 것은 공화당의 ‘감세 신앙’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준다.
12년째 대선에서 내리 진 민주당이 대안으로 내놓은 클린턴도 ‘세금을 거둬 쓰는’(tax and spend) 전통적 민주당원이 아니라 개과천선한 ‘신 민주당원’(New Democrat)을 자임했다. 클린턴은 집권 후 연방 소득세 최고 세율은 33%에서 39%로 올리기는 했으나 레이건이 집권기간 이를 70%에서 28%로 내린 것에 비하면 거의 손대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투자가들의 압력에 굴복, 자본 소득세는 오히려 깎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여년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세금 올릴 것을 공언한 포드, 카터, 먼데일, 두카키스 등은 모두 떨어지고 감세를 약속한 레이건,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등은 모두 당선됐다. 감세는 백악관으로 가는 특등 티켓임이 입증된 셈이다.
워니스키는 “유권자들은 항상 산타클로스에게 표를 주지 스크루지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다. 민주당은 각종 사회보장 혜택을 약속하는 산타클로스다. 공화당이 이에 맞서려면 세금을 깎아주는 산타클로스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3년간 대대적인 두 차례의 감세를 단행했다. 거기다 5,000억달러 규모의 메디케어 처방약 혜택까지 주는 법안에 서명했다. 사회보장 혜택을 주는 민주당의 산타클로스에 세금 깎는 공화당 산타클로스 역까지 겸한 셈이다. 거기다 경제도 술술 풀리고 사담 후세인도 잡혔고…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상황 같이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좋을 때 옷깃을 여미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이름난 현자에게 누군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진리 하나만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자 “모든 것은 변한다”고 답하고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다. 과연 부시가 모두의 예상대로 오는 11월 백악관 수성에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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