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잡는 게 매다.
대통령후보 경선을 지켜보는 민주당 유권자들의 요즈음 속내가 이렇다. 선거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 유권자들은 당선 가능성(electability)을 대선 후보 선정의 제1조건으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깰만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라면 조건 없이 팍팍 밀어주겠다는 분위기다. 백악관 탈환이라는 염원을 달성하기 위해 유권자와 후보간의 개인적 ‘선호 코드’에 기초한 선택을 뒷전으로 밀어둔 셈이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찬밥’ 신세였던 존 케리 연방상원의원이 예선전 초반에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원래 민주당 지지자들의 ‘첫 사랑’은 케리가 아니라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였다. 지명전에 앞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딘은 케리를 20포인트 이상으로 따돌리고 독주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케리에게 원투펀치를 맞은데 이어 3일 치러진 ‘미니 수퍼 화요일’ 7개주 예선에서 완패하면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예선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지명전 티켓을 무난히 따 낼 것으로 여겨졌던 딘의 추락은 민주당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딘은 선거전 기간 내내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과 그의 보수색 짙은 정책을 한 묶음으로 싸잡아 두들겨대는 등 시종 민주진영 내 좌파와의 ‘코드’ 맞추기에 주력했다.
‘좌’로 치우친 딘이 목소리 큰 소수의 지지를 등에 엎고 지지율 선두를 달리자 민주당 유력 인사들은 “이념적 편향성을 고수할 경우 진보주의 기수를 자처하다가 72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에게 대패한 조지 맥거번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정치적 편향성이 90년대 이후 내부 분열을 일으키며 소수파로 전락한 진보세력을 규합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거대한 부동층을 형성한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등을 떠밀어내기 십상이라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딘은 이같은 경고를 클린턴을 추종하는 ‘회색분자’들의 잔소리로 일축했다. 게다가 그는 9.11참사를 계기로 국가안보에 대한 미국민의 인식에 큰 변화가 왔다는 사실을 평가 절하했다.
그 결과는 예선 초반전의 참패로 나타났다. 백악관 탈환이라는 지상목표 달성을 위해 선호 코드를 유보한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좌파 코드를 들이댄 그의 실수였다. 딘의 거품이 깨지면서 한때 매력적으로 비쳐졌던 그의 튀는 언행도 “리더십보다는 쇼맨십이 강한 정치인”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불러왔다.
딘의 패배 요인을 분석해 보면 리더십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리더십이란 정치인이나 군지휘관, 혹은 기업 경영자들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이다. 사회의 다원적 구조로 인해 어느 정도의 연령대에 이른 사람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집단에서 리더의 위치에 서게 되고, 그에 합당한 지도력을 요구받게 된다. 회사의 말단 기혼 직원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구성원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아울러야 하는 어엿한 지도자다.
딘의 패인은 코드 맞추기에 치중한 편협성과 변화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 통찰력 부족, 물거품 같은 현상에 취해 주변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은 독선과 오만이었다.
기왕 선거의 해를 맞았으니 남의 얘기만 할게 아니라 우리 각자 자신이 현재 처한 위치에서 적절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 싶다.
혹시 나야말로 공정성과 균형감각을 상실한 채 개인적 코드를 기준삼아 무리를 가르는 편협한 직장상사는 아닌지, 가족들 앞에서 권위만을 앞세우려드는 못난 가장은 아닌지, 일터와 가정에서의 위치를 구성원들의 신임투표로 결정한다면 자리보존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강규<국제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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