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기자
국악이란 우리나라 음악이란 뜻이다. 한민족 고유의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상고 시대부터 내려오던 국악이란 말이 모습을 보인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역사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중종실록과 선조실록(수정 본)에 나타난 국악이라는 용어는 외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나라의 음악을 지칭할 때 사용된 흔적이 있다.
외국음악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로 우리나라음악을 국악으로 표현한 듯 하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으로 국악이란 말은 조선음악으로 바뀌어 36년을 지냈고 광복의 기쁨과 함께 빼앗겼던 용어를 되찾았다. 해방 후 함하진 등의 음악인들이 대한 국악원이라는 단체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면서 국악이 사회 전면에 등장했다는 역사 기록이 남아있다.
1951년 국립국악원이 개원하면서 정부기관의 공식명칭으로 사용되었으나 1985년까지 국악과 조선음악이 혼용되어 사용된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국악이란 말도 전통음악과 관련된 한정된 의미로 쓰이고 있어 초창기 조상들이 사용하던 뜻과 많은 개념의 변화가 있어왔다.
오늘날 국악이라 불리는 음악은 요즈음 새롭게 창작된 신국악(新國樂)과 창작국악(創作國樂)까지 포함하고 있다. 국악 부분에 창작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국악의 개념이 정립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의식 있는 젊은 대학생으로부터 우리문화 지키기 운동이 시작되어 국악이 명맥을 유지하고 발전되어 온 것은 높은 가치를 부여 할만한 일이다. 미국에서도 한인 유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유명한 대학에는 풍물패가 활동하고 있다. 국악의 한 부분인 풍물을 무속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국악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국악이라는 용어는 아직도 광복을 맞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근래에 풍물과 국악에 대한 의식변화가 일고 있어 반가운 일로 나타나고 있다. 유바시티 한인 침례교회가 풍물패를 조직하고 미국 속에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나서자 지역 한인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의식의 발전에서 온 현상일 것이다.
이것은 불과 1-2년 전에 UC데이비스 풍물패가 어느 교회의 초청으로 공연을 할 때 무속음악이라며 사람들이 앉은 뒤편에서 공연하라고 했던 일과 대조를 이룬다.
한 교회의 장로는 신성한 교회에서 드럼을 쳐서는 안 된다며 음악집회 공연 중 교회의 모든 전원을 빼버려서 혼이 났다는 얘기는 이제 과거가 됐다. 드럼이든 풍물이든 생각의 발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졌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우리문화를 판단할 때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래야 조상들의 고유한 정신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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