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주부>
내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만큼 요리를 할 줄 안다면 ‘장금’이 만큼 음식을 잘 할 거란 생각이 든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얼마나 표 안 나게 많이 먹는 지 알 수 없다는 남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소리소문 없이, 게 눈 감추듯이 맛있게 먹는 재주가 나에겐 있다. 가끔 남편은 돌솥 우동하나 사준 덕에 나랑 결혼할 수 있었다고 얘기 할 때가 있는데 그 말이 틀린 말 같지가 않다. 지금 생각에도 그 때 광화문 뒷골목에서 먹은 우동은 특별한 데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맛을 찾다보니 남들보다 요리 책이 적은 것도 아닌데, 요리 책에 자꾸만 욕심을 내고, 신문 보듯이 하루에 한 번씩은 요리 책을 본다. 요리 책을 들여다보면서 ‘맛을 그리는 일’은 정말 쏠쏠한 재미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전라도 요리를 머릿속에 한 상 차려 봤다가, 보기 좋고 깔끔한 서울 음식으로 상을 갈고, 지난 여름에 먹었던 개성요리의 그윽한 맛으로 상을 또 한 번 갈아엎는다. 비라도 올라치면 인사동에서 먹었던 항아리 수제비가 동동 떠다니고 그에 질세라 일본식 냄비우동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간다.
이런 나에게 ‘대장금’이란 드라마는 정말 황홀경을 선사했다. 그 호사스런 수라상에 슬며시 젓가락을 갖다대고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임금 역을 맡은 배우가 얼마나 부럽던지, 누가 기미상궁(음식에 독이 있나 없나 임금보다 먼저 먹어보는 상궁)역 안 시켜주나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참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조선왕조가 수명을 다한 지 백년이 다 된 지금까지 누군가가 그 맛을 지켜내고 있다가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 꽃 피우게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시대의 간극을 메운 그 분들이 있었기에 나 역시 눈으로나마 호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맛을 지켜내는 분들이 이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게서 딸로,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구한 맛의 족보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맛깔스러움이 채워지는 것이다. 나는 내 딸에게 어떤 맛을 전해 줄 수 있을까? 먹는 재주만큼은 확실히 전해줄 자신이 있는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