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순<주부>
산을 몇 겹 넘고 바람지나 보랏빛 먼 그리움 건너면 갈대 손 흔드는 냇가에 고향이 있다.
바람의 등에 업혀 어디든 날아가면 그 자리에서 뿌리내리고 사는 민들레의 홀씨처럼, 나도 어느 날 갑자기 날아다니는 기계에 실려 태평양 너머 멀리도 날려왔다. 낯선 땅에 흙덩이 헤치고 잔기침 해가며 발 뿌리 내려 보지만 아직은 서툰 걸음인 것을 나는 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눈물로 헤어지고 이민을 오면서 ‘꼭, 돌아 올께요’ 말을 했지만 로버트 프르스트의 ‘길’처럼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을 듯 하다.
오늘은 아버지의 생신이시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들썩한 날에는 나도 시골 집에 가고 싶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내 유년의 강가, 그 고향 마을에는 강이 흐르며 높다란 미루나무 가지 위에는 까치 둥우리가 얹혀있고 들판에는 기차가 지나다녔다. 강둑 옆으로는 아버지의 텃밭이 있고 밭에서는 옥수수가 익어갔다.
어린시절 우리들의 놀이터는 강 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방학이라도 되면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그저 강으로 모인다. 더운 여름 날이면 하루 종일 물에 살 섞어 놀며 송사리도 잡고 다슬기도 잡고 모래 사장을 뛰어 다니며 놀았다. 개구쟁이 남자 애들은 친구들이 멱을 감는 동안 옷가지들을 몽땅 가지고 집으로 가버려 옷을 뺏긴 아이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동네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강에는 아버지의 나룻배 한 척이 있었다. 고기 잡는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맑은 날에는 나룻배를 타고 그물로 고기를 잡으셨고 비가 오고 장마가 질 때에는 족대를 가지고 고기를 잡으셨으며 남동생과 나는 잡은 고기 담을 통을 들고 신나게 따라다녔다. 또 겨울에 강이 얼었을 때는 얼음에 구멍을 뚫고 긴 창으로 얼음 밑을 지나는 커다란 잉어들을 잡기도 하셨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일 처리를 엉성하게 하면 “허허, 거미줄로 방귀를 동이지” 하시면서 항상 깨닫고 지각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오면 당신의 친구분 들께 “이게 우리 딸이여. 이쁘잖아!” 자랑을 하셨다. 내가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했을 때는 우리 딸은 두고 가면 안되겠냐고 하시면서 많이 서운해 하시던 아버지... “아버지 생신이신데 함께 있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했더니 “아휴, 그 멀리서 기억하고 전화만 해줘도 고맙지” 하신다.
부모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은 가장 큰 불효요, 늙으신 부모님을 멀리 떠나와 자주 얼굴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 역시 큰 불효 중에 하나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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