쵀재명<엔지니어>
지난 며칠 계속 비가 내렸었다. 추운 겨울이 떠남을 알리는 마지막 겨울비인 동시에, 꽃피는 춘삼월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봄비가 말이다. 비 그친 뒤 하늘은 더욱 푸르름을 짙게 하여 흰 구름에 눈이 부시도록 만든다. 이런 봄비는 이 땅의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수가 되어준다. 저 언덕 위를 푸르게 펼치고 있는 초원의 풀들에서부터 집 뜰에 심어져 있는 작은 화초, 그 화초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말이다.
촌놈이 바다건너 미국이라는 땅에 발을 내딛었을 때, 난생 처음 접하는 풍경및 생활들에 많은 신기함을 느꼈었다. 사람들의 외모나 언어 등은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었기에 별 다른 점을 못 느꼈는데, 주위에 펼쳐있는 캘리포니아의 높고 낮은 언덕들의 모습이 눈에 확 띄었다. 그때가 겨울철이었는데 주위가 푸르게 둘러 쌓여있음에 먼저 놀란 것이다.
당연히 고국이라면 추운 겨울이어서 푸른색의 모습을 보기 힘든데. 그러다 봄이 오고 마지막 봄비가 멈추고 언덕들은 그때가 되서야 오히려 겨울을 만난 듯 하나 둘 푸른 풀잎을 버리고 갈색의 구릉으로 변하고 말았다. 정 반대로 되어 가는 이런 모습이 처음에는 너무나도 신기했는데, 나중에야 이곳 지형이 사막지형이어서 물이 없는 여름에는 따가운 햇살에 풀들이 말라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봄비와 함께 시작하는 고국의 들판은 생명의 움직임. 기나긴 추위 속 움츠리고 있던 작은 씨앗에서 시골 논두렁을 따라 냉이랑 쑥이랑 봄 내음을 알리는 나물들이 돋아나고 풀들도 새싹을 들어 올리기 시작한다. 멀리 들판에는 추위에 떨던 보리 싹들이 왕성히 호흡을 시작하여 쑥쑥 자라 오르고 그들의 머리 위로 아지랑이가 아랑 일고, 시냇가에 우뚝 솟아있는 마루나무 꼭대기에도 생명의 호흡은 왕성히 일기 시작한다.
이곳 캘리포니아 들판에도 봄비는 생명수가 되어 주위의 언덕들과는 반대로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기 시작한다. 거무스름한 땅위에 농부들의 일손이 분주히 움직이어 작은 새싹들이 태어나면 봄비를 이어가는 스프링쿨러가 온 대지를 촉촉이 적셔준다. 그리고 우리들의 집 뜰에 있는 나뭇가지에서도 지난 겨우내 잠자던 새싹들이 봄비에 젖어 연두색 얼굴들을 하나 둘 내밀기 시작한다.
따스한 봄이라기보다는 생명들이 새로운 삶의 왕성한 호흡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봄은 더욱 내게 가슴 설레게 하며, 그런 삶들에 생명수가 되어주는 봄비이기에 한없이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봄비하면 떠오르는 좋아하는 시가 있다. 이 시를 음미해보며 우리들의 봄을 화사하게 맞이해 보자.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 「봄비」전문 : 이수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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