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웅호 박사
안중근 의사 서거 94주년 맞은 손자 안웅호 박사
매년 3월 26일이 되면 남몰래 가슴 아파하는 이가 있다. 이 날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날이다.
현재 생존한 안 의사의 유일한 혈육인 안웅호 박사(71세)는 조용히 할아버지의 유품을 꺼내고 그의 뜻을 되새기며 발자취를 더듬는다.
안 박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하나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할아버지의 뜻과 반하는 분단된 두 개의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생전의 김일성 초청에도 안 박사는 이북을 방문한 후 3.8선을 넘어서 서울로 갈 수 있다면 초청에 응하겠다고 말할 만큼 분단된 조국에 분노하고 있다.
그는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인하여 중국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13살 때까지 살았으며 독립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그 후 미국인 학교를 거쳐 6.25 전쟁 중 간암으로 사망한 아버지(안중생 투사-당시 44세)의 장례를 치르고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19세였던 안 박사는 어머니(정옥년 여사)와 함께 미국 유학 길에 올라 현재 새크라멘토 지역에서 살고 있다.
안중근 의사 순국 당시 2세였던 아들(중생)은 결혼 후 아들 하나와 두 딸을 두었으나 일년 전 큰딸은 사망했으며 작은 딸은 어릴 때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호적상 안 박사가 유일한 유공자 가족으로 등록되어있다.
안 박사는 중국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으나 25년 전 이혼하고 내과 의사로 정년 퇴직한 후 현재 혼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의 훌륭한 풍습과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뜻이 젊은 세대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슴아프다고 안 박사는 말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3년 전, 그는 한국을 방문, 안중근 기념관에 들러 할아버지의 영정에 자신이 집필한 ‘인간성의 위기’라는 책을 헌정하기도 했다.
올해로 안중근 의사 서거 94주년을 맞이하는 그의 마음은 유난히 무겁기만 하다.
살아 생전에 한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그의 희망이 회의 적이기 때문이다.
그는기술적 혁명이 획득한 것은 신뢰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세계가 평화를 향하여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할아버지가 강조한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반으로 갈라져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한국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한 할아버지는 영원히 살아있으며 지금도 숨쉬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는 강한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
<김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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