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미치코상 왔어요. 일어나서 밥 잡수세요.” “뭐? 미치코상이 왔어?”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간호사가 먹여주는 밥을 먹는다. 이 할아버지는 심한 치매증 환자로 자기의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며, 대부분 간호사들이 말을 걸어도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는 환자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미치코상 이야기만 하면 벌떡 반응을 하며 미치코상이 밥 먹으라고 한다고 이야기하면 얼굴에 반가운 빛이 돌며, 쉽게 먹여주는 밥을 고분고분 받아 드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할아버지는 부인이 둘이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미치코상이었다. 더 구체적인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치매가 심한 환자의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는 미치코상이란 어떤 여인일까?
알츠하이머병이란 뇌 속의 신경세포들의 퇴행성 병균이며 그로 인해서 뇌 피질의 콜린(choline)계 활성이 감소되며, 병리조직학적 소견으로는 뇌의 피질 및 피질하 회백질의 전반적인 신경세포 상실이 있으며, 다발성 노년 전염병(senile plaque) 또한 신경섬유에 헝클어진 변화도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상당한 유전적 요소도 존재해서 14, 19, 21 크로모좀이 연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광범위하고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신경세포의 기능장애 속에서도 어떻게 한 사람의 이름이 그렇게 선명히 기억되어질 수 있고, 그 이름에 반가운 감정으로 반응하며 또한 행동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 현상을 신경병리학적으로 설명하려면 50년, 100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추측컨대 진하고 가슴에 사무치는 사랑이란 큰 고통을 배경으로 생겨나는 것 같다. 여러 전쟁의 영화에서 보듯이(‘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아로운과 히데코의 사랑, ‘지상에서 영원으로’), 삶과 죽음을 배경으로 한 곳에 진실하고 잊지 못할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가 많다. 아니면 심한 인종차별 및 계급차별의 사회여건에서, 또 좁게는 학벌, 가풍의 반대를 무릅쓰고 또는 불치의 병을 경험하며 더욱 절실한 사랑의 관계를 보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특히 결혼에 대해서 고민하는 일 중에 하나는 이런 간절한 사랑의 대상을 찾고 있지만 현대를 살면서 고통스러운 체험이나 현실이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간절한 사랑은 경험할 수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더 이상 감동적인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또 가끔 볼 수 있듯이 일상생활을 벗어나서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다쳤다든지 했을 때 보여주는 아들의 극진한 간호,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져 혼자 이국에서 공부하며 고생하며 보내주는 학비를 받으며 공부하는 유학생 자녀가 부모의 어려움을 생각하는 모습, 남편의 경제적 또는 신체적 불편으로 정성을 다해서 치료하는 부인의 간절한 모습.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상황에서의 부부관계, 자녀관계 그리고 연인들의 관계란 모두 각자가 나름대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서로에게 별로 해줄 것이 없고, 주고받고 하는 정을 나눌 기회가 없다. 그러다 보면 나쁜 것만 보이게 되고, 좀더 잘해 줄 것을 바라기만 하다 보면 서로 싸우게 되고 적대감이 생기고 그것으로 그처럼 서로 사랑하며 필요한 관계가 될 수 있음에도 성격적인 문제 또는 다른 그렇게 크지 않은 일들로 해서 갈등을 딛고 스스로 만든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주위에는 미치코처럼 그렇게 간절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여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 별 고통 없는 현실이 즉, 삶과 죽음의 배경이 없는 상황에서 애절한 사랑이 표현되기는 힘들다.
나를 찾아서의 제 칼럼은 다음 호를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 그 동안 애독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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