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 밑에서 재무장관을 하다 부시 행정부의 문제점을 파헤친 ‘충성의 대가’라는 책을 써 유명해진 폴 오닐은 프레스노 스테이트 칼리지 출신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 최대 기업의 하나인 알코아와 인터내셔널 페이퍼의 회장과 사장을 역임했다. ‘구 경제 기업’을 ‘신 경제 기업’으로 변모시킨 그의 능력은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그에 관한 연구 논문을 내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 내 실세이자 오닐을 재무장관으로 천거한 딕 체이니 부통령 역시 별 이름이 없는 와이오밍 대를 나왔다. 그러면서도 34살 때 포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6선 연방 하원의원, 국방장관, 세계 굴지의 기업인 핼리버튼 총수를 거쳐 현재 부통령에 이르고 있다.
돈 에반스 상무장관 또한 오스틴 텍사스 주립대학을 나온 후 석유 시추 노동자로 출발, 그 회사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른 후 장관으로 발탁됐다.
명문대 출신이 휩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 정·재계도 가만히 보면 비 명문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와 관련, 얼마 전 흥미로운 보고서가 하나 나온 적이 있다. 프린스턴 대학 교수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앨런 크루거는 1976년 30개 대학에 입학한 1만4,000명의 1995년 수입을 조사한 일이 있다. 물론 명문대 출신 수입이 비 명문대 출신보다 연 2만 달러 정도 높았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를 SAT 점수로 나누자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SAT 1,200점을 맞고 그에 합당한 대학에 간 학생의 수입은 연 평균 9만 3,000달러였다. 그런데 같은 점수를 갖고 이보다 입학 기준점이 200점 정도 낮은 학교에 간 학생의 평균 연봉도 9만 3,000달러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SAT 점수가 같은 한 어느 학교를 가건 20년 후의 수입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셈이다.
물론 명문대를 가는 이유가 꼭 수입 때문만은 아니다. 명문대 ‘간판’이 주는 자부심과 재학 기간 중 맺어 놓은 ‘커넥션’ 등은 장차의 자산이 될 수 있다. 또 명문대 ‘간판’이 있으면 취직할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명문대의 이점은 일단 취직이 되면 승진이나 봉급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크루거 교수에 따르면 그 자리에 있으면서 얼마만한 능력을 발휘하느냐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보다 직장 생활에서의 성공을 좌우한다.
지금부터 연말까지는 고3을 둔 학부모와 당사자들이 어느 대학을 갈까를 놓고 씨름하는 기간이다. 공부를 잘 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가능하면 명문대를 보내고 싶어하겠지만 어마어마한 학비 부담에 망설여지는 경우도 많다. 1976년 당시 5,900달러 정도이던 하버드 1년 등록금은 이제 3만8,000달러로 치솟았다. 장학금과 융자금을 받아도 부모 허리를 휘게 만들기에 충분한 액수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보다 무엇을 공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교육 전문가들 사이의 상식이다. 본인은 별로 원하지 않는데 명문대 인기학과라는 이유만으로 자녀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은 비극의 씨를 심을 뿐이다. 하버드를 중퇴하고 세계 최대의 기업을 세운 빌 게이츠를 보면 능력과 비전이 있는 한 대학을 굳이 나올 필요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 낳은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워싱턴이나 링컨, 미국 최고 부자인 존 록펠러나 앤드루 카네기 모두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를 갖고 있는 부모들은 “교육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결국 진짜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는 교육”이라고 한 오스카 와일드의 경구를 음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민경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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