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의 표정은 하나 같이 침울하기 짝이 없다. 분노와 경악이라기보다는 차리리 허탈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비극의 잔해들은 차마 눈길을 주기 어려웠다. 인모(人毛)로 짠 모직에 이르러서는 전신에 소름끼치는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았던 한 문인이 남긴 방문기다.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잔악해질 수 있는가.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 수백만의 유대인이 말 그대로 말살된 이 살인공장이 그 대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100만이 희생됐다고 한다. 아니 400만이 처형됐다고 한다. 어느 수치가 맞을까. 이제 와서 수치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이유가 어떻든 인간을 이처럼 집단적으로 말살한 행위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심각한 좌절감을 표출했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 그 일회성 과거사에 대한 분노나 충격을 넘어선 깊은 좌절을 이 문인은 그런 식으로 묘사한 것 이다.
이와 함께 쏟아내는 소리 없는 절규가 있다. 그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Never again!”의 절규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절규가 어느덧 사라졌다. 인류 학살의 참극이 곳곳에서 재연되면서다. 그리고 그 “Never again!”의 절규는 의문문으로 바뀌고 있다. “Auschwitz again?”
“공기를 가르고 총성이 울린다. 일곱 명의 죄수가 쓰러졌다. 그 시체는 곧 거대한 공동묘지로 던져지고 호명은 다시 시작된다. 수천의 죄수들은 열을 짓는다. 기아와 질병과 절망뿐인 그 잔혹한 하루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미 언론이 전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모습이다. 한 사람이 정치범으로 몰리면 3대가 끌려온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노동에, 기아에, 고문에 그리고 죽음뿐이다.
할아버지, 손자, 어머니…. 차례로 죽어간다. 이렇게 죽은 사람이 4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수백만이 굶어 죽었다. 100만인가, 400만인가. 수치를 따져야 의미가 없다.
체제가 조직적으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온 것이다. 이 북한 주민이 맞은 참상을 놓고 던져지는 질문이 바로 ‘Auschwitz again?’이다.
오늘부터 기도가 시작된다. 미주 땅의 교회가 함께 모여 동포의 참상을 외면한 죄를 회개하자는 거다. 그리고 그 흑암의 땅, 그 죽음의 땅에서 동포를 구해 달라는 기도다. 교회의 행사로만 그쳐서 될 일일까.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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