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거듭 태어난 크리스찬이 되었는가를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어느 해 여름 아버지(부통령 시절)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메인주에 있는 우리 가족 별장에 초대했다. 아버지는 저녁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가족들을 다 불러모은 다음 그레이엄 목사에게 신앙에 관해 무엇이든 질문하라고 말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신앙에 관해 여러 가지를 설명했는데 그는 논리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의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사랑 그 자체였다.”
“그날 이후 나는 텍사스에 돌아와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나는 술을 끊었다. 끊었다기보다 술이 먹고 싶지가 않았다. 주변에서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가 1985년이었다.”
그러니까 부시는 교회에서 말하는 “중생을 체험한 기독교인”이다.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 신자 중에서도 에반젤리스트(복음주의자)에 속하며 기독교 원리주의를 고집한다.
이번 선거에서 부시가 승리한 것은 기독교 보수세력의 열렬한 선거운동 덕분이다. 그런데 이 기독교 보수세력의 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크리스찬 연대’(Christian Coalition)라는 단체이고 이 단체의 핵심 멤버들이 남부의 에반젤리스트다.
그런데 이 ‘크리스찬 연대’는 에반젤리스트로만 짜여진 것이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과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데 그 파워의 막강함이 있다. 어떻게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이 손잡고 단체를 만들 수가 있었을까.
1993년 뉴욕 초중고교에 ‘레인보우 커리큘럼’이라는 새로운 교과과정이 추가되었다. ‘레인보우 커리큘럼’이란 무엇인고 하니 동성연애자들의 생활방식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이때 가톨릭 신자들과 에반젤리스트들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동성연애를 가르칠 수는 없다”고 들고일어나 시교육국 전면 개편을 주장했다.
시교육국을 개혁하려면 선거를 통해 교육위원을 다 갈아치우는 수밖에 없다. 이들은 기독교 신자들의 투표 참여를 끈질기게 호소해 교육위원들을 보수파 기독교인들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가톨릭과 에반젤리스트의 연합전선이 형성되었다.
‘크리스찬 연대’의 주장은 선명하다. 기독교인들이 성서 내용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공직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낙태와 동성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부터 묻는다. “낙태를 찬성한다”고 대답하면 그에 대한 낙선운동을 펴고,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하면 열렬히 지지한다.
기독교 보수파들이 사회 바로잡기의 무기로 휘두르고 있는 이 테스트에 걸려 정치적으로 매장된 진보주의 정객이 하나 둘이 아니다. 민주당의 케리 후보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낙태와 동성연애 문제에 있어 좀더 보수적인 자세를 보였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미국에서 기독교 보수세력을 무시하고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힘들다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 증명되었다. 민주당이 낙태와 동성연애 문제에 대해 자세 수정을 하지 않으면 대통령 선거에서 매번 떨어질 수도 있다는 가설이 성립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미국은 지금 완전히 우향우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철 <주 필>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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