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악의 축으로 분류되기 훨씬 전 대학을 다닐 때, 미국 외교 및 안보전략 시간에 북한 핵문제가 토론의 주제로 등장했다. 10여명의 대학생 대부분은 미개국 북한의 핵 보유가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을 듣다가 같은 동족이 너무 매도당한다는 생각에 “미국은 수천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핵무기 실전 사용 전력까지 있는 마당에 왜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면 안 되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토론은 격해졌고, 결국 지도교수가 개입해 말싸움을 중단시켰다.
지난 15일 외국 정부 에이전트 등록법 위반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예정웅씨가 형 선고 전 피의자 진술을 통해 북한에 신문기사 등 ‘정보’를 제공한 이유에게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다가 문득 학창시절 때 북한 핵 토론이 뇌리에 떠올랐다.
예씨는 “미국을 사랑하는 미국 시민인 나의 조국은 불행히도 분단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1,000만 이산가족은 죽을 날이 다가와도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분단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통일운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북한 사람들과 친해져야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해 그랬다(정보를 제공했다)”며 ‘동기의 순수성’을 주장했다.
이처럼 미국 사는 한인들은 우리 민족이 분단된 채 다른 두 체제 밑에서 마음대로 오가지도 못하는 사실에 대해 자각하고, 아픔을 느끼고, 또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인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간에는 너무 큰 거리가 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퇴임 후인 지난 1989년 10월18일 자신의 센추리시티 사무실을 찾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한국 내에서 국기를 불태우고 극렬한 폭력을 휘두르는 과격한 젊은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휴전선을 넘어온 사람들의 조종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공산진영, 자유진영으로 나눈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편가르기 방법에만 차이가 있을 뿐 공산권이 몰락하고 10년이 지난 2004년에도 여전히 미국인 정서다. 세계를 우리편, 네 편으로 나눈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 사실은 이를 입증하는 증거고, 예씨의 동기와 북한에 건네진 정보 가치보다는 이를 건네 받은 대상에 더 무게를 두고 징역2년과 2만달러 벌금형을 선고한 LA 연방법원의 결정도 같은 정서의 산물이다.
미주에는 남북한 양쪽 체제의 입장에 각각 뿌리를 두고 통일운동에 몰두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가 많다. 활동 내용과 방법 또한 다양하다. 예씨 사건을 계기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한인들은 최근의 현실과 이상간 거리를 분명히 측정했으면 한다. 그리고 북한, 통일이란 주제를 “조국통일의 꿈, 그 꿈만이라도 나는 배가 부르다”는 낭만주의적 틀에서 벗어나 냉철히 고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경 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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