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합작품이라서 사러 나왔다” “함께 만들어 기쁘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평생 기념으로 간직하겠다” “문명도 그릇과 더불어 시작됐으니 우리도 새로운 시작을 맞았다” “눈물이 난다” “혈혈단신 내려왔는데 감개무량하다” “정성껏 만들었고 이제 첫 월급이 기다려진다” “계속 이 제품을 쓰겠다” “송년모임에서 동창들에게 선물로 주겠다”…
희대의 명품을 대하듯 요란한 반응이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그저 평범한 물건이다. 시커멓게 그을고 찌그러지기 십상인 냄비 주위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다. 생긴 것은 여느 냄비와 다를 바 없지만, 그 ‘출생 배경’이 독특하다보니 다양한 품평이 꼬리를 문다.
개성공단에서 첫 남북공동으로 만들어진 뒤 8톤 트럭에 실려 6시간 동안 경의선 도로를 달려 롯데백화점 전시장에 선보인 냄비 1,000세트가 출시 하루만에 동이 날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생산자, 소비자 할 것 없이 모두 들떴다.
냄비처럼 여러 얼굴을 한 물건도 드물다. 각설이 타령에 등장하는 거지의 냄비는 벗어나고 싶은 ‘삶의 바닥’을 상징한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빈민가에서 불우이웃에 대한 온정을 담은 것을 출발로, 겨울이면 지구촌 곳곳에 등장하는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는 밋밋하고 각박한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주는, 그래서 다가가고 싶은 ‘작은 성 소‘다.
“입맛이 없어 얼큰한 라면을 끓여먹으려는데 부엌에 냄비가 없으면 황당하다 못해 혈압이 쭉 올라간다”는 싱글이나, “뻑적지근하게 준비를 한 야외 나들이에서 물 끓일 냄비가 없으면 허탈하다”는 가장의 경험담은 냄비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적당한 냄비가 없으면 요리하기가 싫어진다”고 해서 튀는 주부로 분류할 수도 없다. 지나친 냄비 사랑은 필요 이상으로 사다놓는 냄비 사재기로도 연결된다. “신속하게 끓여먹을 수 있는 냄비는 외향적이고 진취적인 민족에게 알 맞는 도구”라는 갸우뚱해지는 냄비 예찬론도 있다.
그러나 냄비를 무조건 좋아만 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민족성에 종종 견주어지는 까닭이다. 금새 뜨거워졌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성격을 빗대는 데 냄비란 두 음절이 들러붙는다. ‘냄비근성’은 우리 스스로 거리낌없이 내뱉는 단어이면서도 제 얼굴에 침 뱉는 말이기도 하다.
남북한이 분단 후 처음으로 손잡고 만든 물건이 바로 냄비란 사실이, 출시하자마다 비등하듯 팔려나간 진풍경이 켕긴다. “남북관계가 냄비 끓듯 잠깐 부글대다가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게 아니냐”며 우려 섞인 반응도 있다. ‘민족화해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개성냄비에서 읽었으면 한다.
<박봉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