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휴가 길에 짧은 틈을 내 서해안의 안면도를 돌아 수덕사, 예산, 칠갑산 국립공원을 거쳐 대전과 충주까지를 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안면도서부터 충주까지는 국도를 이용했는데 돌아오면서 뭔가 빠진 듯 허전했다. 생각해보니 마을이나 들, 길에서 도통 어린이들의 모습과 소리를 보거나 들을 수 없어서였다.
길도 잘 닦여 있고 가야산이나 칠갑산, 또 단양팔경 부근 산야는 아카시아 향기 그득한 한 폭의 수채화였다. 대학 4년간 여름, 겨울방학 대부분을 심었던 청양군 대치면의 두메산골 구치리가 관광도로가 뻥 뚫린 부자마을(?)로 변한 것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놀랍게 변모된 마을에 들러 아직도 생존한 이장부부랑 다시 만나 까마득한 시절을 회고했다.
주마간산 격으로 휘둘러 본 여러 지역에서는 물론, 그렇게 몇 시간이나마 머물렀던 구치리에서도 아이들을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서울서 온 대학생 언니, 누나들과 놀고 싶어 꼭두새벽부터 달려와 숙소 담 위에 조롱박 같은 머리통을 줄줄이 올려놓고 조잘대던 그 많은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니 안동 부근에서 자랐던 동료나 울릉도 출신 친지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자신들이 다닐 때는 한 학년에만 수백 명에 달했던 초등학교가 이제는 6학년까지 통틀어도 겨우 수십명이 남아 폐교 위기라고 했다. 하긴 서울이나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은 젊은이나 아이들이 없고 따라서 초중고교와 대학교들도 속속 문닫는다는 보도는 미국에서도 익히 접했다.
그러나 외관상 번듯한 주택이 많은 도로변 마을조차 세 집중 한집 꼴이 폐가로 방치된 것을 직접 보니 착잡했다. 폐가가 썩은 이처럼 섞여있는 마을은 정적에 잠겨 을씨년스럽기만 했고 생기를 불어 일으키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린이 공황사태는 시골만이 아니다. 최근 방학을 맞은 자녀를 한국에 보낸 동료가 “같이 놀아 줄 아이들이 다 조기유학이다, 어학연수다, 해외 견학이나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일정을 단축시켜 돌아올 수 밖에 없게 됐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겨우 1명이나 2명 아이만 가진 부모들이 앞다퉈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거나 조기교육 사슬로 묶어놔서 서울에서도 뛰어 노는 어린이들이 증발한지는 벌써 오래라고 한다.
게다가 젊은 엄마들 절반은 아이를 1명만 낳고 15%는 아예 안 낳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혼여성들은 10명중 3명 꼴로 직장 포기할 바에는 결혼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 모습 보기가 어려워지자 벌써 ‘미혼모라도 좋다 아이만 낳아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도 외국산 어린이들을 수입하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농촌 봉사활동에 열정을 쏟던 당시 주요 캠페인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이었다. 갓 스무 살이었지만 그 캠페인이 적절하다 싶었고 그래서 호롱불빛에서도 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했던 30~40대 장년들에게 문교부서 배운 대로 ‘정관수술로 산아제한을!’하고 강조했다.
그땐 진심이었다. 그들과 그들의 자녀가 가난에서 빠져 나오려면 그 길 밖에 없어 보였다.
그다지 오래 지난 것 같지 않은데 이제 한국부부의 자녀 출생률은 인구가 안정되는 적정수치라는 2.1명보다 훨씬 낮은 1.2명으로 감소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지만 한국의 저출산률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노인들만 버글대는 가분수 기형 사회가 될 것이다.
비단 한국뿐 아니다. 미국에서 사는 한인들도 자녀들의 늑장 결혼 추세및 자녀 안낳기 풍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커리어 쌓느라 결혼도 늦지만 결혼 후 바로 임신하는 커플도 거의 안 보인다. 안 낳아도 어떠냐는 사고가 팽배해 있다.
농활 때 부르짖었던 산아제한 화두가 부메랑으로 되돌아 와 이제는 더 많은 자녀를 낳아달라고 사정해야 할 판이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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