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크레딧 카드 연체율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부동산 호황으로 순 자산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가 올라가면 부채의 잠재적 폭발성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2000년 가구 당 평균 7,842달러 -> 2004년 9,312달러
저축률 1990년대 초 7.9% -> 2005년 5월 현재 0.6%
캐시(34)-스캇(40) 가브리엘슨 부부는 다른 평범한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 말 인터넷 호황시절의 생활 씀씀이에 익숙해져 있다. 2000년대 들어 주식 버블이 터지면서 주식 투자자들이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가브리엘슨 부부의 생활패턴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기존의 생활방식을 고수했다. 당연히 지출이 많았다. 이들 부부는 3세, 5세 두 아들과 펜실베니아 웨스트 체스터에서 4,000스퀘어피트짜리 집에서 살고 있다.
실질저 축액은 1999년 4조4,000달러서 50% 증가
부동산 호황 덕 가계 순자산 5년 새 15%이상 늘어
금리 오르면 크레딧 카드 이자·모기지 상환부담
무방비 인플레에 실직 겹치면 ‘메가톤 급’ 폭발성
이전에 살던 집의 2배 규모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치는 뚝 떨어졌지만 의기소침해 하지 않는다. 식구에 비해 집이 넓지만 빈 공간에도 그럴싸한 가구들을 사들였다. 차도 업그레이드 했다. 파트타임 세일즈우먼으로 일하는 캐시는 포드 브롱코 대신 볼보 스테이션 왜건으로, 상업용 부동산 브로커인 스캇은 5시리즈 BMW에서 7시리즈로 바꿨다.
이들 부부는 수천달러 정도의 크레딧 카드 빚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빚이 만 단위를 넘어가니 슬슬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일반 소비자나 경제학자나 할 것 없이 미국인의 부채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경제 성장이 예전 같이 다이내믹하지 않고 유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부채에 비교적 둔감한 미국 소비자들의 태도를 이대로 지켜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고 시사주간지 ‘US 뉴스 & 월드 리포트’가 최근 보도했다.
가계 부채는 하나의 사이클을 그린다. 경기가 좋으면 마치 계속해서 좋을 것처럼 ‘흥청망청’ 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80년대 초반, 90년대 초반 같이 경기가 나쁠 때는 허리띠를 졸라맨다.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인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가 2000년 이후 불황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가계부채가 2000년 개인 가처분 소득의 96%에서 2003년에는 111%로, 2004년 말 현재 113%로 증가했다. 부채 액수가 증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소득이 그에 맞추어 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처분 소득에 대한 부채비율 증가는 가벼이 볼일이 아니다.
이에 반해 같은 기간 저축률은 격감했다. 1990년대 초 7.9%에서 2001년 3.4%, 지난 5월엔 0.6%로 하강했다. 저축률이 낮은 것은 소비를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돈을 빌리는 부대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상 최저의 금리 덕이다.
그러나 마냥 안이하게 대처할 국면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저금리 영향으로 소비자들이 마구잡이식 융자를 즐겼다. 2000년 평균 한 가정의 크레딧 카드 빚은 7,842달러였다.
2002년엔 8,940달러, 지난해엔 9,312달러로 늘었다. 미국 가정의 25%가 크레딧 카드 빚을 제 때 갚지 못하거나 적어도 한 구좌에서 크레딧 한도액을 넘어서 지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부채 상황이 이처럼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크레딧 카드 연체율이 2000년보다 줄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낮은 금리로 인해 1990년대보다 이자 부담이 적다는 점도 분명하다. 가처분소득에 대한 부채지불 비율이 2001년 18.3%에서 2005년 8월 현재 18.45%로 소폭 상승한 정도다.
또한 저축률은 감소했지만 실제 저축액은 1999년 4조4,000억달러에서 50% 가량 증가했다. 부동산 호황으로 가계 실질 자산이 주식 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1999년 이후 15% 이상, 지난해 1년간 8.2% 각각 늘었다. 부채는 늘었지만 동시에 순 자산도 늘었다.
미국인의 부채는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는 관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금리가 올라도 가능할까? 크레딧 카드 금리는 지난해 평균 15.7%에서 올해 17%로 올랐다. 부동산 시장의 경우, 새로 융자를 한 사람 가운데 절반 가량이 변동 모기지를 선택했다. 금리가 올라가면 매달 불입액도 올라간다. 수많은 주택 소유주들이 그 부담을 안게 된다.
인플레도 걱정거리다.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이 올라가면 당장 가계에 압박을 가하게 된다. 개스 값 인상이 단적인 예다.
빚이 많은 가계에 결정타를 때리는 것은 실직이다. 광고회사에서 이벤트 기획자로 일하던 트레이시 무어는 카드 빚이 2만달러 정도였지만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9.11 이후 갑자기 실직하고 말았다. 1년 새 빚이 4만달러로 껑충 뛰었다. 파산 외엔 대안이 없었다. 과도한 부채가 안고 있는 폭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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