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중국의 전국시대. 연나라 시골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꿈은 당시 유행의 첨단을 걷고 있던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가 유행하는 걸음걸이를 배우는 것이었다.
소원대로 한단에 가게 됐다. 그러나 걸음걸이를 제대로 못 배우고 자기의 걸음걸이마저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어기적어기적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단지보(邯鄲之步), 혹은 한단학보(邯鄲學步)로 알려진 고사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우화로. 남의 것만 추구하다가는 자신의 것마저 잃어버린다는 걸 경계하고 있다.
영어를 배우려고 난리다. 영어를 미끈히 구사한다. 그것만으로도 한몫 단단히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그러므로 이제 한국에서도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다. 바로 경쟁력이다.
이 영어시대를 맞아 진기록성의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영어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어린 자녀에게 혀 수술을 시킨다. 3년여 전이었나. 한국 발 기사로 날아든 이야기다.
이 유행이 시들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뒤이어 날아든 소식은 베이비 유학 붐이었다.
초등생 때에는 이미 늦는다. 영어에 대한 ‘감’을 일찍 심어주고 보다 본토 발음과 가까운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3세 때부터 유학을 보내야 한다는 거다.
이 ‘초(超)조기 유학바람’이 한국의 강남지역에서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베이비 유학의 필수는 ‘엄마의 동행’이다. 그 경비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초(超)조기 유학바람은 강남의 일부 지역의 전유물로 그친 감이 없지 않다.
그 대안인가. 이번에는 ‘나 홀로 아동’의 미국방문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다. 다섯 살에서 열두 살 미만 어린이들이 혼자 미국 여행을 하는 게 유행이란 이야기다.
영어연수가 주목적이라고 한다. 이런 ‘나 홀로 아동’이 급증하다 보니 항공사들이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마다 업그레이드 된 서비스를 내세우면서.
일면 이해가 간다. 제법 산다는 집은 너도나도 조기유학이니 부모 입장에서 초조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방학 중 ‘나 홀로 여행’이라도 시키자. 뭐, 이런 심정인지도 모른다.
이 게 그렇다고 반드시 바람직한 여행일까. ‘영어가 안 되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부모의 압박감이 조급증으로 발전해 아이를 해외로 내모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서다.
그 강박증, 조급증이 아이에게 전염되면 오히려 상처가 된다. 그 결과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저 한단의 청년 꼴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해서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그 영어가 도대체 뭐길래, 부모들의 속을 그리 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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