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무를 잘라 집을 짓는 동안 그들은 망치와 철판으로 거대한 배를 만든다. 우리가 흙으로 그릇을 빚고 옥수수와 감자를 기르는 동안 우리가 마당 가득 붉은 꽃을 심고 나무 그늘 아래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들은 검은 깃발을 만든다. 우리가 물고기를 잡고 세간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아 자장가를 불러줄 때, 그들은 온다. 검은 깃발을 펄럭이며 흰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바람처럼 달려온다. 검은 배를 타고 그들은 소리도 없이 온다. 그들의 거대한 배는 우리 마을 옥수수밭을 깔아뭉개고 우물과 느티나무가 있는 넓은 길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들은 옹기점의 갈색 그릇들을 부수고 우리가 일군 논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우리 아이들을 어둡고 커다란 배에 잡아 가둔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우리들의 나무집에 불을 놓고 떠난다. 검은 깃발을 펄럭이며, 천천히 떠난다.
김 참(1973~ )‘검은 깃발’전문
살아있다는 것이 흙으로 그릇을 빚고 밭을 가꾸고 세간을 마련하고 나무를 심고 아이를 낳아 자장가를 불러주는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평화로움에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행복을 쌓아가는 동안 이와 전혀 반대되는 것들이 만들어져 더 큰 힘으로 우리의 평화로움을 망가뜨리고 있다. 이것은 마치 성경에서 말하는 ‘공중권세’에 노출된 삶 같은 악몽이다. 그러나 악몽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삶의 조건 중 하나이니 이를 어쩌랴.
문인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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