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처음 와서 가장 놀란 일 중의 하나는 미주 한인들이 쓰는 우리말은 한국어와 영어를 마구 섞어 쓰는 혼합체라는 점이었다. 조금만 오래 산 한인이면 어느 사물이나 표현에 대해서는 한국어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주류 사회에 적응하느라고 영어만 열심히 해서 그런 것뿐 아니라 우리말에 대한 기본 인식과 존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1.5세나 2세들의 경우 더욱 심해서 도저히 한국어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정도일 때가 많다. 순수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1세들부터 사전을 찾아서라도 자기가 아는 한 정확한 우리말을 하여 자기 자녀들이나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2세, 3세들도 정확한 우리말을 배우고 쓰게 될 것이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학교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고 기업체에서도 영어로 회의를 하며 모든 취직 시험에서 영어 시험 점수를 필수로 따진다고 하니 할 말이 없지만 미국에서 발간되는 한국 신문지상에서 기사 제목을 영어 알파벳으로 쓴다든가 ‘개학’ 이라고 하면 될 것을 ‘백 투 스쿨’로 외래어 아닌 외래어를 만들고 또 한국 TV 방송에서 영어로 하는 광고를 그대로 내보내는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을 생각할 때 분노를 느낀다. 영어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어는 영어대로 정확히 하고 한국어는 한국어대로 순수하게 하지 않으면 두 가지 언어 중 아무 것도 제대로 구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외국어도 잘 한다는 것은 진리로 되어 있다. 요새처럼 여러 나라 말을 모두 정확히 구사해야 직업과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시대에 가장 친근하고 가까운 우리말을 정확히 못하면 영어도 스페인어도 어느 언어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글 타자를 못 치면 고국의 친지들과 이 메일을 못한다. 또 우리말 표현을 잘 모르면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수가 없다. 그러니까 다른 공부보다도 우선 우리말 구사를 잘하는 노력부터 하면 좋을 것이다. 비디오로 한국 드라마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쓴 문학, 역사책을 많이 읽고 한국어 사전을 보면서 친구들과도 정확한 편지를 쓰는 작은 노력을 하면 한국어 하나라도 잘 구사하게 되어 당장 2세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다.
거대한 영어의 물결 속에서 한국어를 순수하게 지키려면 외로운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남가주에서는 시립 도서관들도 벌써 한국 책들을 꽤 많이 갖춰 놓았고 어디에나 한국 사람과 기업체가 많아 언제라도 한국어를 할 수 있으니 이런 혜택을 받은 우리는 이 행운을 십분 이용해야 할 것이다.
글을 쓸 때에 한문에서 온 말이 많으면 벌써 어감이 딱딱해진다. 순수한 본디 우리 단어로만 쓰면 소리가 아름다워지며 다감하고 서정성이 풍부한 문제가 된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융통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편한 속성으로만 우리말을 쓸 것이 아니라 한글의 무한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한국어를 구사하면 그것은 우리 인생의 큰 기쁨이며 사랑이 될 것이다.
이연행
불문학 박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