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종과 화합 힘쓴 ‘큰 어른’
한인사회 발전의 주춧돌 역할
건강센터· 청소년회관 등 기여
2차대전과 한국전쟁의 영웅이었던 고 김영옥 대령(사진)은 남가주 한인들에게는 전쟁영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는 현재 한인 사회의 주춧돌을 놓은 선구자였고, LA 아태계 커뮤니티의 화합에 앞장 선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인종차별철폐운동에도 앞장섰고, 가정폭력을 당한 아시아 여성을 위한 ‘아시안 여성 포스터 홈’을 건립하기도 했다. 2003년 본보가 선정한 이민100년의 영웅9인에 선정 됐을 당시 김 대령은 “현재 한인 등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상황은 내가 자라날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강조했었다.
LA다운타운 벙커힐에서 출생한 그는 어릴적부터 타인종 친구들을 끌어 안는 원만한 성격과 리더십으로 주변의 칭찬을 받았다.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새미 이씨는 “나는 항상 일본인이라고 불릴 때마다 백인 아이들과 자주 충돌했지만 그는 그들을 이해시키고 다스렸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같은 정신세계는 군에서 한국 전쟁고아들을 돕는 인도주의 정신으로 빛을 발했고 한인사회 발전의 빛과 소금이 됐다.
그는 1972년 대령으로 예편한 이후 비영리단체 ‘유나이티드웨이’의 한인 담당관과 이사로 재직하면서 한인건강정보센터(KHEIR)와 한인청소년회관(KYCC), 한미연합회(KAC), 한미박물관(KAM)의 설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유나이티드웨이 이사 재직시절 한인사회에 건강관련 시설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LA카운티에서 KHEIR 설립을 위해 대규모 펀드를 지원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KAM 이사장과 KAC 이사를 역임하는 등 한인 비영리단체에 직접 몸담기도 했다. 고 김대령은 KAM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2002∼2003년 한인사회 위상 제고와 복리증진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과 한국방송공사가 선정한 해외 동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미박물관과 일본계 교육재단 ‘고포브로크’ 설립 및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던 고 김 대령은 일본계 커뮤니티에서도 큰 존경을 받고 있다. 1999년8월 캘리포니아주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상정했을 때 일본계 미국인들은 당초 강력한 반대 로비를 펼쳤으나, 김 대령이 설득에 나서자 로비를 중단하고 ‘위안부 결의안’을 받아들인 일화도 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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