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몬 브라더스는 80년대 월가의 황제로 군림하던 회사였다. 연 매출이나 수익 면에서 뉴욕 금융계의 기라성 같은 경쟁사들을 압도했다. 이 회사가 이토록 번창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루이스 라니에리다.
라니에리는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다. 1968년 대학 2학년 때 살로몬 브라더스 야간 사환으로 취직했다. 그런데 취직한 지 몇 달도 안 돼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병으로 앓아 누운 것이었다. 병원비가 1만 달러가 넘게 나왔다. 당시 19살이었던 그가 받던 월급은 70달러였다. 회사로부터 돈을 좀 꾸어볼까 하는 생각에서 막연히 얼굴을 알던 직장 상사를 찾아갔다. 혹시 해고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면서.
얘기를 꺼내자마자 상사는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그 돈을 월급에서 까려는 것으로 생각한 라니에리가 항의하자 다시 걱정 말라며 돌려보냈다. 살로몬 브라더스는 사환 아내의 병원 비를 아무 조건 없이 전액 물어줬다. 라니에리가 회사에 대한 평생 충성을 약속했음은 물론이다.
그 후 그는 브로커로 승진 발령을 받았고 거기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1978년 회사가 모기지 채권부를 신설했을 때 그를 책임자로 맡겼다. 80년대 초까지 모기지는 채권 시장에서서자 취급을 받았다. 주택이라는 든든한 담보물이 있는데도 투자가들이 이를 꺼린 것은 주택 소유주가 언제든지 이를 갚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방 채권은 이자는 낮지만 정한 기간까지 안심하고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모기지 채권은 이자가 높아도 상대방이 언제 갚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채권자 입장에서는 수입이 불확실한 것이다.
살로몬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모기지를 모아 미리 갚는 모기지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기지 풀을 3그룹으로 만들어 1그룹과 2그룹이 다 갚기 전에는 갚을 수 없는 모기지 그룹을 만들면 월가의 큰손들도 안심하고 셋째 그룹의 모기지를 살 수 있는 것이다. ‘담보 모기지 채권’(CMA)이라고 불리는 상품은 이렇게 탄생했다. 요즘은 로컬 은행에서 주택 융자를 하더라도 내년에 이 은행에 페이먼트를 보낸다는 보장이 없다. 이 모기지 상품이 누구한테 팔려나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살로몬 브라더스는 지역 은행에서 모기지를 사들여 보험회사 등 대형 투자가들에게 팔기 시작했고 모기지는 정부 채권과 사채를 누르고 최대 채권 시장으로 떠올랐다. 살로몬은 한 동안 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고 라니에리는 그 책임자로 있으면서 회사에 매년 수억 달러를 벌어다줬다. 옛날에 진 빚을 수만 배로 갚은 셈이다.
그러나 라니에리 스토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커지자 유대인과 앵글로색슨이 주도하던 회사 내 반대파가 생겨났다. 그가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아탈리아계 이민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문제가 된다. 그는 입사 19년만에 시큐리티 가드 호위 속에 그토록 아끼던 회사에서 쫓겨나고 그의 추종자들도 모두 살로몬을 떠난다.
이들은 살로몬의 독식을 부러워하던 메릴 린치, 아메리컨 익스프레스 등 경쟁사에 의해 즉시 스카웃 되고 살로몬의 수익은 급속히 줄고 만다. 이 회사는 1991년 연방 채권 구입시 서류 조작으로 2억 9,000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벌금을 맞고는 트래블러스 그룹에 인수 합병돼 독립 회사로는 월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수없이 나온 이야기지만 기업은 결국 사람이다. 꼭 직원 아내의 병원 비를 댈 필요는 없다. 명절날 감사 카드와 함께 작은 선물을 주는 것도 좋다. 직장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유능한 사람을 알아보고 그를 감동시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기업은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망한다는 것이 살로몬과 라니에리가 주는 교훈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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