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카지노로 유명한 페창가는 인디언 말로 ‘샘물’이라는 뜻이다. 남가주 테메큘라 (인디언 말로 ‘태양’이라는 뜻) 골짜기에 살고 있던 이들 부족은 자신들의 생명을 보존해준 이 샘을 기리기 위해 자신들을 페창가 족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생명이 이 골짜기에서 탄생했으며 자신들이 이곳에서 1만년 전부터 살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18세기말 스패니시 미션이 들어서면서 1만년의 평화롭던 삶은 끝나고 노예와 농장 노동자로서의 새 삶이 시작됐다. 설상가상으로 19세기 중반 골드러시와 함께 가주가 태어나자 이들은 주 정부에 의해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나 현재의 보호구역으로 옮겨오게 됐다.
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가 보면 벽에 그려진 남가주 지도를 볼 수 있다. 분명히 남가주 지도지만 지명은 생판 처음 보는 것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 대신 인디언 고유의 지명을 붙여 놓은 것이다. 이들에게는 지금 일시적으로 빼앗긴 채 살고 있지만 이 땅은 우리 땅이라는 의식이 박혀 있다. 이들은 앞으로 1만 년 후에도 우리는 자손들에게 고유의 신화와 삶의 방식을 전해줄 것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1일 미 전국 각지에서 불법 체류자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LA에서도 수십만 명이 다운타운에 집결, 시위를 벌였으며 알바라도에서 윌셔 가를 따라 라브레아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에 반대하는 단체들도 대항 집회를 벌였는데 이들이 외치는 구호 중의 하나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였다. 페창가 인디언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 할까 궁금하다.
지금은 보편화된 입국 비자라는 것은 알고 보면 생긴지 얼마 되지 않는다. 19세기 영국이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타민족이 본국으로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했다. 그전까지 유럽 각국이나 미국을 여행할 때 비자라는 것은 필요 없었다. 미국 초기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20세기 이전까지 비자니 영주권이니를 따지면서 미국에 온 사람은 거의 없다.
불법 체류자 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토론의 대상이 되는 이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들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관계없이 법을 어겼기 때문에 추방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는 불법 체류자를 필요로 하며 이들이 모두 추방될 때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데 대해서 이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백인들이 꺼리는 종류인데다 임금이 낮기 때문에 인플레 억제 효과까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6년 레이건 사면 이후 불법 체류자 숫자는 600만에서 1,200만 명으로 늘었는데도 미국 경제는 꾸준한 성장을 계속했다.
경제적 이유가 잘 먹히지 않자 들고 나오는 것이 이들이 범법자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류 어느 사회에나 보편타당하며 변하지 않는 법이다. ‘살인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법학자들은 이를 자연법이라 부른다.
이와는 달리 그 때 그 때 사정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법이 있다. 어제까지 시속 55마일의 속도 제한이 있는 길도 오늘 법이 바뀌어 65마일이 되면 그 때부터는 55마일을 넘겨도 더 이상 범법자가 아니게 된다. 이민법은 둘 중 어느 범주에 속할까. 두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연방 정부가 사면법을 제정해 실시하면 어제까지 범법자이던 사람도 당당히 시민권자가 된다.
한자로 법(法)을 풀이하면 ‘물이 흐르는 대로 간다’는 뜻이다. 아무리 좋은 법도 현실에 맞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1,000만 명이 넘는 불법 체류자를 모조리 색출해 추방하기 위해서는, 밀입국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는, 나치를 능가하는 강제 수용소와 만리장성과 맞먹는 철벽을 세워야 한다.
그런 것을 허용하는 것이 과연 미국의 건국 정신에 부합하는 것일까. 불법 체류자 추방론을 외치기 전에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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