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이발관의 형 전태국(왼쪽)씨와 동생 전태영씨가 손님의 머리를 다듬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머리는 꼭 이발관’ 고집 남성들 사이 입소문
30대 전태국·태영씨, 장가는 동생이 먼저
가든그로브 블러버드의 형제이발관. 이 곳에선 정말로 두 형제 이발사가 머리를 깎는다.
힘든 이민생활로 30대 중반 노총각(?) 대열에 어쩔 수 없이 합류했지만, 이들이 깎고 다듬는 것은 머리만이 아니다. 10여년의 미국생활을 통해 처음으로 품게 된 ‘희망’이다.
전태국(36), 전태영(35) 형제는 한인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30대 이발사. 이들이 20세, 19세 때 이민 왔다는 사실을 알면 함께 이발관을 운영하게 된 사연이 자못 궁금해진다.
착해만 보이는 두 젊은이가 머리를 만져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머리는 꼭 이발관’을 고집하는 한인 남성들 사이에서는 입 소문이 났다. 특히 고객들은 두 이발사가 정말 형제란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한번 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1989년 가든그로브에 첫 발을 디딘 형제는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당연히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도 즐기고 싶었지만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은 팍팍했다. 그러던 90년대 초 페인트를 하던 형 태국씨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크게 다칠 뻔했다.
태국씨는 “그 때 어머니가 자식들이 높은데 안 올라가고, 햇볕 안 봐도 되는 직장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 덕분인지 이발사 자격증을 따게 됐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발사 자격증을 땄어도 쉽지는 않았다. 리버사이드 히스패닉 지역에서 이발관을 열었지만 강도도 맞았고, 미국 이발소를 전전하며 종업원으로도 일했다.
그러는 사이 동생 태영씨도 형을 보며 이발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해 1997년 자격증을 땄다. 각자 미국 이발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형제는 2001년 가든그로브에 ‘형제이발관’을 열었다.
막상 문을 열고 간판도 ‘형제이발관’으로 달았지만 처음에는 손님이 너무 없었다. 결국 동생 태영씨는 다시 다른 이발관 종업원으로 일해야 했지만, 형은 꾸준히 가든그로브를 지켰다.
그러기를 2년. 겸손한 형 태국씨의 솜씨에 반한 손님들이 단골 목록을 채워가면서 가게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동생도 합류해 형제이발관이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됐다. 손님이 늘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온 형제는 2년 전 이민생활 13년만에 두 다리 뻗고 잘 내 집도 마련했다.
태국씨는 “한 손님이 한국에서는 머리감고 스타일링은 셀프로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알려줘 그것을 도입했더니 손님들이 좋아했다”며 나름대로 소박하게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중장년층이 대부분인 손님들을 깍듯이 대해온 것은 물론 기본이다.
지금도 형제는 아침 8시30분이면 함께 나와 어김없이 문을 연다. 함께 벌어 나눠 갖는 것이지, 누가 일을 더했다, 안 했다를 따지는 것은 이들에겐 의미 없다.
그렇게도 원하던 안정을 찾은 형제는 올 여름 좋은 소식이 있다. 동생 태영씨가 반려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다.
태국씨는 “동생이라도 먼저 짝을 만나서 다행”이라 하고, 태영씨는 “형이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야 되는데”라며 서로 위해 주는 모습이 낯간지러울(?) 지경이다. 함께 고생하며 다져온 이런 우애 덕분인지 이들의 행복 만들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배형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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