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월드컵 한국팀의 오디세이가 아쉽게 막을 내렸다. 비록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지난 2주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인들은 4년전의 감격에 못지 않는 열정으로 하나가 됐었다.
당시 한국팀이 4강신화를 이뤘을 때 한반도를 뒤덮었던 월드컵 열기는 아무도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붉은 악마’의 열광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응원은 세계 사람들을 경탄케 했고 여기 2세들에게는 한국에 대해 배우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감격적이고 자랑스런 순간이면서도 그 때 마음 구석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다른 국민들의 응원과 다른 것이 딱 잡아 말할 수 없지만 4,000만 국민이 그처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왠지 꺼림칙했다. 만사를 너무 비뚤어지게 봐서 괜히 꼬투리를 만든 것이겠지 하고 스스로를 나무랬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 과학자’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파문을 멀리서 보면서 그 때 마음에 걸렸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일개 언론이 어떻게 감히 민족적 영웅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느냐는 듯 MBC 보도수첩 기자들을 매국노로 몰아넣은 범국민적 분노는 이견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군중심리와 민족주의의 이면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유명인사도 여론에 거슬리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매장 당하는 모습을 볼 때, 정치인들은 물론 연예인들까지 여론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볼 때, ‘국민 과학자’, ‘국민 가수’ 등의 말이 나오는 등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민족주의를 생각할 때 그 꺼림칙한 느낌이 되돌아온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도 독일인들이 한국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은 듯 경기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인파가 광장에 모여 국기를 흔들며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흐뭇하면서도 생각해보니 독일만큼 민족주의가 합해진 군중심리의 위험을 보여준 나라도 없다.
한국도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 이민 오는 다문화 국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우리 나라가 ‘세계 몇 안 되는 단일민족’이라는데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 하인즈 워드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 혼혈인 문제가 마침내 주목을 받게 됐는데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이다.
미국에서 자란 한인 학생들도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어려운 것이 이견이나 다양성을 억제하는 한국 사회와 전혀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교육 관계자들은 대학에 지원하는 한인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가 대입 원서에서 톡 튀어나는 개성이 없는 것이라고 흔히 지적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붉은 색 군중사이에 끼어 한국의 선전을 기원하면서 자랑스러운 점이 많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비록 한국이 아쉽게 탈락했지만 세계 사람들과 함께 지구촌의 축제 월드컵의 남은 경기들을 즐기자. 월드컵의 취지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우정아
특집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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