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 주 베어 시의 소방서. 세일 사인이 붙어 있다. 다른 주택이나 빌딩에 붙어 있듯이 ‘매입자’를 부르고 있다. 부동산 에이전트 사무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광고 문구처럼 보인다. 나무 천정, 벽돌 외관이 특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서가 깊다는 게 포인트다. 이 건물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어 시의 유일한 소방서였다. 베어 시의회는 오래된 이 소방서를 팔려고 내놓았다. 버몬트 주 중부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베어 시는 주민 9,000명의 작은 마을이다. 도시라고 하기엔 간지러울 정도로 작다. 세수가 적은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시의회는 하나밖에 없는 소방서를 일반에 팔아 세수의 재원으로 만들 계획이다. 시의회는 지역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해 소방서 건물을 시장에 던졌다. 1만2,000스퀘어피트인 이 건물의 가격은 25만달러. 소방차들을 위한 차고는 물론이고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 이층 공간과 지하실까지 갖추고 있다.
비좁아 소방국은 수개월 전 400만달러 새 건물로 이전
9천명 소도시 버몬트 주 베어 시의회 세수 마련 고육책
1만2,000스퀘어피트, 부동산 시장에 25만달러에 내놔
공청회서 상가·박물관·커뮤니티센터 전환 등 아이디어
시의회, 매입 희망자들의 고용창출 방안 검토 후 결정
소방대원들 “우리 숨결이 서려있는 곳인데” 아쉬워 해
이 소방서 건물은 1904년에 지어졌다. 102년 전이다. 노후 정도가 심해 새 주인이 들어서면 손 볼 곳이 많다. 집으로 쓰든, 상가로 사용하든 대대적인 개조가 불가피하다. 28년 경력의 소방대원 데이빗 글래딩은 “오래되긴 했지만 내부의 나무장식이나 시설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멋진 건물”이라고 했다.
소방서는 아주 오래된 나무 바닥이 깔려 있다. 걸으면 삐걱대는 소리가 난다. 계단도 고풍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역사적 유적지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건물 곳곳에 많은 얘기가 서려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시장에 내놓았다고 해서 아무나 덜컥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건물을 매입하려는 사람들은 10월까지 시의회에 이 건물에 대한 매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시의회는 청문회에서 매입 후보자들의 계획서를 검토한 뒤 12월 31일까지 매입자를 확정하게 된다.
새 주인은 이 건물에서 세수를 창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용효과를 내는 것이 한 방법이다. 살림살이가 빠듯한 베어 시 정부로서는 고육책으로 유서 깊은 소방서를 팔려는 것이다. 그러니 이에 합당한 세수원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시의회는 매입 희망자의 건물사용 계획이 시정부의 의도에 부합 할 경우 가격을 약간 깎아주더라도 적임자로 선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시의원들은 이 건물을 주택이나 아파트로 개조하는 방안에는 일단 반대하고 있다. 시의원 캐롤 다우즈는 그러나 “이 방안을 원천봉쇄한다는 뜻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베어 시가 무턱대고 배짱을 부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우즈 시의원은 “우리는 적절한 매입자를 원한다. 비즈니스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운타운의 소방서 건물을 자주 찾아 지역 명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시의회가 돈만 따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게 긴요하지만 동시에 유서 깊은 소방서 건물의 외부 형태는 가능한 그대로 살리고 싶어 한다. 경제를 살리고 역사를 지키는 ‘두 마리 토끼잡이’다.
시의회는 이미 지난 봄 주민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들었다. 18-80세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이디어는 소방서를 맥주 집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다른 아이디어는 소방박물관, 커뮤니티센터, 비즈니스개발센터, 나이트클럽, 첨단기술 회사 등으로 다양하다.
이 건물 매각을 맡은 부동산 에이전트 존 비욘돌리오는 최근 15통의 문의 전화를 받았다. 그 중 한 통은 예술가에게서 왔다. 그는 이 건물 1층을 소매상가로 개조하고, 2층에는 다른 업소와 식당들을 유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멀리 텍사스로부터 문의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이 소방서 건물에 맨 위에는 비상벨 탑이 있다. 불침번이 망을 보다 화재가 나면 비상벨을 힘차게 울린다. 하지만 이 건물에는 소방차 1대와 구급차 1대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베어 시에는 소방차가 4대있고 구급차가 2대 있다. 시설이 빈약하니 그 효용성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나머지 소방차, 구급차 등 차량과 장비는 다른 곳에 보관돼 있다. 소방국은 수개월 전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400만달러짜리 건물로 옮겼다. 그러나 소방대원들은 여전히 옛 건물을 그리워한다. 소방대원 글래딩은 “건물이 좁아 새 건물로 이전한 것을 이해하지만 옛 건물엔 무언가 우리의 숨결이 배어 있는데 새 건물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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