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진흥재단이 선발한 한국어반 장학생들의 한국 민박 프로그램 동행 취재를 다녀왔다. 이민 온 이후 처음으로 돌아가는 귀향길이라 깊은 감회가 있었다. 어렸을 때 다녔던 약수터 길도 다시 올라가 보았고 초등학교 복도를 거닐면서 어렴풋이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교실마다 대형 TV등 고급 시설을 갖추고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는 곳마다 최신식 시설로 가득 찬 서울 시내는 미국 학생들도 한국이 더 발전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지하철에서 시각장애자가 철로로 떨어지지 않도록 승강장 전체를 유리로 씌운 모습을 볼 때 한국이 정말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참으로 살기 편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교육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만난 학부모들과 학생들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학원이 학교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한다. 학원에서 미리 배우므로 학교에서는 배우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학생들도 자정이 되어야 학원에서 돌아온다고 한다. 학원이 학교보다 중요하기는 대학도 마찬가지. 한 친척 동생은 이화여대 법과를 다니다가 사법고시 준비 학원에 다니기 위해 휴학하고 있다.
또 영어 열풍 때문에 자녀가 5∼6학년만 되면 모두 조기 유학을 보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미국은 비싸서 필리핀, 싱가포르로 많이 보낸다는 것이다. 영어가 필요 없는 직장에서도 영어 면접을 요구하는 등 영어가 매우 중요하므로 아무래도 외국을 다녀와야 경쟁에서 유리하지 않을까 해서다. 한국 부모들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남들이 모두 하니까 걱정이 돼서 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한 부모는 아이가 TV를 보는 모습을 보면 뭔가 더 공부시켜야 하는 게 없나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취재 때문에 한 민박가정을 방문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는 손님이 와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민박하는 미국 학생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다. 당시 방학이 막 시작했는데도 소파에 누워 학습지를 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례하다기보다는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새벽에서 자정까지 공부만 하는 한국 어린이들이 과연 정서적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런 곳에서 개성이, 독창성이 나올 수 있을까. 한국민들이 이처럼 교육에 퍼붓는 엄청난 시간과 재정적 투자에 비해 성과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뉴스위크가 선정한 ‘100대 글로벌 대학’에 싱가포르는 대학 2군데가 들었는데 한국 대학은 하나도 끼지 못했다.
다른 한 친척은 생활이 어려운데도 셀폰 만큼은 고급을 사서 월부로 지불하고 있었다. 한국도 공짜 셀폰이 있지만 아저씨들만 그런 셀폰을 쓰지 모두 구입한다는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그 셀폰을 보는 사람들마다 왜 그렇게 크냐고 한마디씩 던진다. 비싼 돈을 주고 샀을 때는 마음에 들었을 텐데도 그는 잘못 샀다고 후회한다. 어린 학생도 아니고 30대 성인이 되어서도, 학부모가 되어서도 동년배 압력(peer pressure)에 시달리는 곳.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틀에 박힌 한국의 교육제도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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