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만리장성은 인간이 만든 건물 중 가장 거대한 것이라 한다. 중국의 첫 황제인 진시황제가 기원전 220년부터 짓기 시작한 이 성벽의 길이는 6,352km로 실제로 만리가 훨씬 넘는다. 그 후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이를 보수했지만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16세기 명나라 때 세운 것만 극히 일부가 남아 있다.
진시황이 장성을 쌓느라 동원한 사람은 수백만, 죽은 사람만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이 벽은 ‘세계에서 가장 긴 공동묘지’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시신을 벽 속에 묻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성벽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세워진 장성이지만 외침을 막는 방어벽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하지 못했다. 중국을 침략한 수많은 이민족 중 만리장성이 무서워 쳐들어오지 않은 족속은 없다. 마지막 장성을 세운 명나라는 국경을 지키는 장군이 만주족에 항복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장성과 나라를 넘겨주고 패망하고 말았다.
모택동은 “만리장성에 올라 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지만 지금 만리장성은 관광 명소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베이징 북쪽 팔달령 언덕 위에 남아 있는 장성에 올라 보면 그 옛날에 이 험준한 계곡에 이런 장벽을 용케 세웠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만리장성이 인간이 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란 속설은 잘못된 것이다. 만리장성은 길기는 길지만 폭은 수 미터밖에 안 된다. 실제로 달에 다녀 온 닐 암스트롱은 “달에서 인간이 만든 건축물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달은 그만 두고 그보다 천 배나 가까운 인공위성에서도 이를 보기는 극히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국경 없는 한 개의 푸른 보석일 뿐이다.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로마 시대에는 규모는 작지만 ‘하드리안의 장벽’이 있었다. 영국을 스코틀랜드 부족으로 지키기 위해 하드리안 황제가 기원 2세기 경 지은 이 장벽은 그가 죽자마자 버려졌다. 그의 후계자 안토니우스는 ‘안토니우스의 장벽’을 세웠으나 이 또한 그가 죽은 뒤 방치되고 말았다.
20세기 들어 만들어진 벽 중 제일 유명한 것은 물론 베를린 장벽이다. 1961년 자유를 찾아 서방으로 탈출하려는 동독인들을 막기 위해 세워진 이 벽은 한 때 영원할 것 같았으나 불과 28년 뒤인 1989년 11월 9일 허무하게 무너졌다. 지금 이 벽은 일부분만 역사 보존 차원에서 남아 있을 뿐 나머지는 관광객의 기념품이 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연방 의회는 지난 주말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에 700마일에 걸친 장벽을 세우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시 대통령이 사인할 것이 확실한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가주의 칼렉시코와 텍사스의 엘 파소 등 밀입국자가 많이 넘어 오는 지역에 베를린 장벽을 능가하는 돌담이 세워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불법 체류자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절반이 국경을 넘지 않고 합법 비자로 들어와 눌러 앉은 사람들인데다 700마일을 막아도 2,000 마일에 달하는 멕시코 국경 중 1,300마일이 아직 빈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장벽은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을 험난한 산지와 사막으로 내몰아 목숨만 위태롭게 할 것이 뻔하다.
역사는 모든 장벽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막을 수 있는 장애물은 없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여,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외쳤던 레이건을 숭상하는 미국인들이 베를린 장벽의 수십 배에 달하는 벽을 쌓으려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언젠가는 이 벽도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유물로 전락할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은 정녕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존재인가.
kyumin@koreatimes.com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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