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독립이 힘든 작은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 가족을 초청해 수련회를 여는 한 대형 교회가 있다. 작은 교회는 스스로 수련회를 가기에는 인원이나 재정에서 힘들기 때문이다.
올해 이 수련회의 실무를 담당했던 목사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전하는 목회 현실은 참 열악하다”며 “주일이 되면 목회자 온 가족이 아침부터 식사 차리랴, 예배 준비하랴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4세 목사 아이도 밥통을 들고 쫓아다니는 게 예삿일이라고 한다. 어떤 목사는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평일에 다니는 직장을 빠질 수가 없어 수련회에 자신은 참여하지 못하고 가족만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대형 교회로 성장한 교회도 그 첫 시작은 미약했다. ‘10명이 담임목사 자택에 모여 창립예배를 드렸다’는 게 대형 교회의 교회사에 나오는 첫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모양으로 분쟁이 일어나는 건 대개 대형 교회다. 한인타운 내 최대 교회도 최근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왜 그럴까.
겉으로 드러난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근본은 ‘새로 만년필을 선물 받자 지금껏 쓰던 만년필이 전처럼 소중해지지 않더라’(법정 스님 글)가 아닐까. 하나가 둘이 되면 다른 하나의 소중함은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 때에는 더 많은 교인이 모여 함께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것을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다. 그때는 담임목사는 더 큰 양떼를 칠 수 있는 것만으로 기뻤을 것이다. 믿음의 본이 돼 장로로 부름 받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형 교회가 되니 작은 교회 때 가졌던 절실함이 사라지게 된 걸까. 수천명 앞에서 설교하는 담임목사도, 양 무리를 이끄는 장로도, 그 옛날에는 장애가 되지 않았던 치리권과 교회헌법을 놓고 다투니 말이다.
주일 아침에 힘들어도 수십명 교인이 먹는 음식을 나르던 기쁨은 어디로 갔나. 장로가 된 그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나. 장로 임기가 65세에서 70세로 늘어난다고 천국서 받을 상급이 그만큼 커지나. 담임목사는 권한이 더 강해진다고 말씀에 영성이 더 풍부해지나.
대형 교회의 대다수 교인은 치리권과 교회 헌법은 모른다. 그저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을 붙들고 하루하루 삶터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세상에서 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평안한 교회일 뿐이다.
장자는 ‘바르게 살아가려면 한 발자국 앞에서 멎는 게 옳다’고 했다. 욕심을 다 채우려 하지 말고 약간 모자라고 아쉬운 듯한 상태에서 멈추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이다.
대형 교회가 한 발자국 앞에서 멈추기가 어려워 딱 한 발자국을 더 내디뎌서 그만 벼랑 아래로 떨어질까, 그게 두렵다.
<김호성> 특집2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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