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LA시의회 본회의장.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시장이 거부권을 행사한 ‘흑인 소방관 270만달러 인종차별 소송합의안’을 재가결하는 안을 두고 백인-흑인 의원들간 열띤 설전이 벌어졌다.
흑인 소방관에게 개밥을 먹인 것은 소방국 내 만연한 ‘몹쓸 장난’이라고 주장하는 백인 의원들 주장에 흑인 의원들은 명백한 인종차별 행위라고 팽팽히 맞섰다. 라틴계 의원들은 동족이 연관되지 않아서인지 흑인-백인 의원들간의 대결을 구경하는 양상이었다.
LA 경찰국장 출신의 버나드 팍스 제8지구 시의원은 “몹쓸 장난이라도 상대편이 인종차별이라고 받아들이면 인종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찰 초년병 시절 자신의 책상에 닭튀김(흑인들이 즐기는 음식)을 갖다놓던 백인 경관들의 행동을 언급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잰 페리 제9지구 시의원은 “여러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굴욕감을 심어줘 피해자의 인간성을 말살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발언이 끝나자 허브 웨슨 제10지구 의원은 “배심원 재판까지 갈 때 시정부에 돌아오는 부담이 더 커지는 만큼 합의하는 것이 현명하다”며 “단결해서 시장의 거부권 행사를 뒤집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데니스 자인 제3지구 의원은 “피해자가 백인, 라티노, 아시안이었다면 이번 사안이 인종차별로 비화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흑인 소방관도 아시아계 소방관의 몸에 노란색 겨자를 바르고, 백인 소방관의 성기 주변에 면도크림을 바르는 ‘골탕 먹이기’에 적극 참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백인인 그렉 스미스 제12지구 의원은 본회의에 출석했던 피해 당사자를 지목하며 “귀하가 겪은 고통을 이해하지만 소방관들이 귀하가 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한 것은 아니다”며 “다른 이유라면 몰라도, 바보 같은 소방관의 행동을 인종차별로 비하하는 사람에게는 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강경발언까지 했다.
인종간 편을 나눠 2시간 넘게 설전을 벌였던 시의원들의 난상토론은 다음날 본회의에서 비공개로 계속됐다. 큰 목소리가 오고간 비공개 회의 후 시의원들은 결국 인종 라인에 따라 찬반투표를 던졌다. 라틴계 의원들은 거부권을 행사한 라틴계 시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표결 후 본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시의원들은 다른 인종 동료를 철저히 외면했다. 모두들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이번에 시의회가 보여준 모습은 LA 시의원들간 인종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회였다. 특히 시의원들의 격렬한 자기주장을 직접 목격하면서 다민족·다인종 사회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피부 색깔을 보지 못하는 색맹 진보 정치인임을 강조해 오던 이들이 막상 실전 상황 속에서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과연 진정한 LA시의 화합과 발전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입맛이 씁쓸하기만 했다.
<김경원>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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