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ng attractions’(한국영화가 몰려온다). 지난달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 기간 LA타임스가 게재한 특집기사 제목이다. 한국이 AFM에 21개 영화사 100여명을 파견했고, 규모로는 참가국 중 최고수준이었다니 맞는 말이긴 하다.
한국영화가 몰려왔다는데 도대체 어떤 영화가 온 걸까. 지난달 남은 휴가를 한국영화 보기에 투자하기로 작정하고 AFM을 찾았다. 첫째 날은 한국 영화사 부스 구경에 날 새는 줄 몰랐고, 둘째 날부터 영화 보기가 시작됐다.
2일 오전9시 ‘비열한 거리’와 ‘사생결단’ ‘경의선’이 동시상영 중이었다. ‘비열한 거리’를 봤지만 우울한 후회만 남기고 오전11시 상영 스케줄을 펼쳐야 했다. ‘그 해 여름’과 ‘스승의 은혜’. 공포영화가 내키지 않아 이병헌과 수애 주연의 ‘그 해 여름’을 찾았다.
별다른 감흥 없이 시간만 보내다가 오후1시 ‘사랑 따윈 필요 없어’로 이동했다. ‘신데렐라’ ‘다세포 소녀’ ‘아이스케키’를 포기한 선택이었다. 한국에서 국민의 여동생 문근영은 흥행보증수표라기에 선뜻 골랐는데 배신감이 들었다. 후회로 점철된 반나절, 그래도 오후3시 염정아와 지진희 주연의 영화 ‘오래된 정원’ 덕택에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황석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80년대 격동적인 한국을 알기에 가슴에 와 닿았을 뿐이다.
다음날 오전11시.‘잔혹한 출근’‘예의 없는 것들’‘구미호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예의 없는 것들’로 향했고, 오늘은 출발이 좋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오후1시 일정을 보니,‘아씨와 씨팍’‘마음이’‘폭력 써클’‘네 번째 층’‘가을로’‘중천 예고편’등 6편을 상영하고 있었다.
‘마음이’를 볼 작정이었는데 박기형 감독의 영화라기에‘폭력 써클’로 우회했다. 요즘 한국 고교생들이 구사하는 비어에 충격만 받았고 20분만에 자리를 떠‘마음이’로 옮겨갔다. 개를 주인공으로 한 감동적인 가족영화라 내심 기대했는데,‘마음이’도 잘 나가다가 삼천포행이었다. 주인공 소년을 앵벌이로 만든 것 까진 참았는데 개싸움을 등장시켜 동물학대까지. 아, 가족영화가 맞긴 한 건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똑같은 반복이었다.
올해 AFM에서 시사회를 가진 한국영화는 총34편. 극장 상영관 대여료가 회당 1,000달러(디지털 영화 상영관은 절반 가격)이니 한국영화 상영에만 약 3만 달러가 투자됐다. 그렇다면 실익은? AFM 이전 성사된 계약 외엔 이렇다할 성과가 들리지 않으니 홍보비만 쏟아 부은 셈이다.
‘한국영화가 몰려온다’와 ‘미국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라는 등식은 아직 성립하지 않는 상황. 이제 막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다. 할리웃에서 한국영화가 프랑스, 스페인, 일본 영화 등과 같은 범주에서 회자된다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하은선> 특집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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