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시대의 축제’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말씀드렸던 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보이는 수도승 같은 맑은 정신과 ‘처음처럼’ 소주병에 쓰인 예쁜 필체로 한국의 일반인들에게도 이젠 조금 알려진 이다.
그는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개발독재시절에도 민족과 자주에 대한 신념을 거침없이 얘기하고, 자기는 사회주의자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던 이었다.
필자는 그의 반미사상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지만, 인간적으로 그의 겸손한 인품과 매력을 높이 사는 이들 중 하나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정보당국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던 그의 서울대 경제학과 후배들은 나중 풀려난 이 후 그의 얘기를 하면서 울었다 한다.
독재에 항거해 큰 소리를 치는 것 같다가도, 한번 잡혀가면 서로 발뺌을 하느라 한없이 왜소해지는 이들의 사이에서, 그는 후배들에게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만 얘기하라”고 이들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도 자기가 한 일이지 후배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그들을 감싸고 덮어주었다.
그는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이후 곡절을 거쳐 20년 동안 형을 살고 풀려났는데, 감옥에 있는 동안 공부와 사색을 거쳐 깊이 있는 사상가로 세상에 다시 나왔다.(혹시 모르는 분들의 오해가 있을까 봐 말씀드리는데 위에 언급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개인생활에 대한 얘기이지 사상에 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제 대학에서도 은퇴하고 새로운 인생에 접어든 그에 대해서 필자는 무척 아깝게 생각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이다.
경남 밀양의 훌륭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출중한 재주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쓰여졌었다면 얼마나 나라를 위해서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자기가 잘 살려고 하는 노력은 가상하다고 보일 정도이지만, 경제인으로서 많은 다른 사람들을 잘살게 하려는 노력은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교육자의 아들로 아깝게(?) 된 경제과 신영복 교수의 후배가 김근태군이다(여당 대표를 ‘군’이라하기가 뭣하게 들리지만 같은 과 친구를 의원이니 대표니 하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도 신영복 선배를 따르는 후배들 중 하나였는데, 경제과 우리 동기들은 의식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 김군이 가장 나이가 위인 ‘의식화’ 후배가 되었다.
우리들이 가을 날 오후 상대 교정 소나무 숲에서 오징어 안주로 소주를 마실 때, 김군은 거기에 어울리지 않고 신 선배의 하숙방엘 간다고 떠나던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얘기가 좀 산만해졌는데, 필자는 지금 한국에서 인기 있는 반미사상에 대해서 무척 할 말이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항상 얘기가 미국 쪽으로만 돌면 사람들은 판단의 표준을 엄청나게 올려놓는 것이다.
반미든 친미든 우리가 토론을 하려면 판단 대상에 대한 평준화된 수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기에서 긴 얘기는 하지 못하나 또 적어도 반미를 얘기하려면 신 교수나 김 의원처럼 확신과 양심과 인품으로 그 얘기의 뒷받침을 했으면 좋겠다.
자기 아이들은 전부 미국에 데려다 두고 자기는 이기적인 이유와 겉멋에서 반미를 얘기하는 친북좌파들의 이중성은, 말썽 많은 강정구씨나 추한 모습으로 출근 작전을 벌이는 KBS의 정연주 사장이 좋은 예로 보여준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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