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헨리는 대학 실습실 밖이 새까맣게 어두워진 것도 알지 못했다. 하얀 설계지
위에는 지우개에서 떨어진 것들이 선명한 설계도를 살며시 가리고 있었다. 헨리는 건축학과 프로젝트로 쉐난도 계곡을 잇는 다리를 설계하는 것이다.
선 채로 무려 8시간 설계도에 매달렸다. 반듯한 다리 밑에 아름다운 곡선이 잘 그려지지 않아 몇 번씩 지웠다. 깜빡, 헨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이 곡선이 아버지의 사랑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필을 다시 깎았다.
헨리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학 오셔서 핵공학을 공부하셨다. 학위를 마치시고 고국에 돌아가셨고 어머님과 누이와 자신을 미국에 남겨 놓으셨다. 아버지가 한국에 가셔서 자리를 잡으시면서 온 식구가 귀국했다.
헨리의 한국생활은 매우 힘에 겨웠다. 자유분망하던 미국생활에서 규칙과 통제가 심한 고등학교 생활은 헨리의 창조적인 사고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는 외로움 속에서 허덕였다. 그는 홀로 고궁과 옛 돌담을 찾았다. 흰 눈 속에 덮인 까만 기와가 만들고 있는 처마의 곡선, 그리고 돌담 속에 섞인 황색 흙들이 그를 그나마 즐겁게 했다.
아버지는 헨리에게 너무 미안해 하셨다. 틈틈이 아들이 그려놓은 스케치를 보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다시 미국 대학에 유학을 보내셨다.
헨리는 호호 입술로 바람을 불어 떨어진 지우개 것들을 날렸다. 깨끗한 굵고 얇은 선들이 쉐난도 계곡을 비상하고 있었다. 교양학부에서 만난 밥이 소리를 내지 않고 헨리의 뒤에서 손벽을 쳤다. “야, 너무 멋지다. 고국에 다녀온 보람이 있구나. 다리 밑 곡선이 매우 한국적이지.” 그리고 학교 교무실에서 받아온 메모를 헨리에게 건넸다. 헨리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주머니가 넉넉한 밥은 헨리를 끌고 교문 밖, 멕시코 음식점으로 갔다. 밥은 그가 끼니를 거른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헨리가 말은 않지만 벌써 몇 개월 동안 집에서 돈이 오지 않고 있다는 것도. 밥은 집에서 가져온 옷들로 막무가내로 거절하는 그를 입혀서 추위를 이기게 했다. 헨리는 타코 접시를 순식간에 비웠다.
헨리는 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메모지를 구겼다. 그는 아버지가 너무 측은해졌다. 명퇴를 당한 아버지, 너무 속상한 나머지 심장경색증에 걸려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 달려갈 차비가 없는 자신을, 등록금 재촉의 메모지, 혹 학교를 중단해야 할 형편의 자신이 눈 속으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하고 눈 내리는 하늘을 우러러 봤다. 밥이 헨리의 옆구리를 쳤다. “야, 건축기사. 자넨 하늘에도 다리를 놓으려고 하냐?”
크리스마스 이브에 밥은 헨리의 싸구려 아파트로 택시를 타고 왔다. 밥은 숨을 헐떡이며 헨리를 택시에 태웠다. 그리고 블랙스버그 비행장으로 달렸다. 헨리는 큰 눈으로 밥을 쳐다봤다. “헨리, 난 오늘 인도로 떠난다. 평화봉사단에 조인했지. 나를 전송해주렴.” 그리고 외투 속에서 KAL 티켓을 꺼내 헨리의 손 위에 얹었다.
내가 2년 후에 돌아올 땐 넌 학교를 끝내야지, 약속해라, 네가 만든 브리지는 내 것이다, 알겠니.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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