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칼럼
▶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인간의 평균수명이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기원전 500년에 18세였던 평균수명이 1900년대에 47세로 늘었고 2000년에 와서는 77세다. 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수명은 120세 쯤이 한계점이다.
사람의 수명을 4만3,200일, 즉 120세로 본 동의보감의 기록과도 맞아 떨어진다.
성경 기록에는 1000살 가까이 살았던 인물들이 있지만 최근의 기록으로는 1997년에 사망한 프랑스의 잔 루이 칼맹이라는 할머니로 122세까지 살았다.
인간의 소박한 바램은 더 오래 살고 세상 무대에 오래 남아있는 것이다. 불로장생의 허망한 꿈에 젖기도 하고 무병장수의 기대 속에 산다.
100살 미만의 지극히 한시적인 삶을 살다 가는 왜소한 존재임에도 마치 천년을 살 것처럼 생명의 도달점을 잊고 산다.
세월은 소멸과 변화의 법칙에 따라 우리 곁을 도도히 스치고 지나간다. 돌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직류하고 낙하한다. 그런 세월을 거스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변화되고 마모되며 어느 한순간 사라지고 만다.
영원한 것이란 없다.
인생에 있어 세상 경험이 많은 사람이든 짧은 삶을 산 사람이든간에 살다 간 흔적으로 이름을 남긴다지만 그것마저 세월이 가면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희미해져 간다.
결국 남아있는 게 없다. 그래서인지 인생에 대한 고뇌가 깊어질수록 거기서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공(空)이란 개념을 연상케 한다. 공이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 존재하는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알아낼 길이 없다. 그게 바로 공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삶을 살아간다. 평생동안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워도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까닭에 삶이 신비(神秘)한 것이다. 모르는 것이 많을수록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이 삶이라서 부드럽고 가볍게 살아가려면 짓누르는 짐 만큼은 내려놓고 사는게 상책이다.
마음 가볍고 몸도 가쁜한 그런 생활이 얼마나 편하겠는가. 마음 비우는 일이나 몸을 가볍게 다스리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몸과 마음자리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행복을 향한 출발점으로 통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幸福)을 생산하는데 한 평생을 투자하지만 행복과 불행, 행운과 불운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행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살기 마련이다. 불행을 맛보지 않고서는 행복의 가치를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행복을 가지려면 불행도 가질 수 있고 참기 힘든 아픔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순간 순간들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뜻이 담겨 있다.
사는 날까지 끊임없이 심장이 뛰는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 없는 순간들이란 있을 수 없다.
오늘이란 비록 덧없이 허송한 날일지라도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간절히 살고 싶었던 날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생명이란 기적(奇蹟)으로 비유할 만큼 소중하다.
세상을 얼마만큼 살아내느냐 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백년 미만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인 것 같다.
문무일/신뢰회복연합조직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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