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라이프>
“첫눈에 반한 사람을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해? 만약, 그렇다면 넌 내 운명이야…”
사실 난 첫사랑이 했던 이 말에 반했었다. “그래, 난 완전 니 운명 맞는 거 같애.”
그 후, 우리는 딱 삼개월 만에 헤어졌다. 첫눈에 반한 운명의 운명은 딱 삼개월짜리였던 것이다.
하긴, 이 광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삼개월이나 삼억광년이나 그다지 차이는 없겠지만, 첫눈에 사랑에 빠져 아찔한 절벽을 향해 번지점프를 했다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후유증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사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일은, 운명의 상대임과 동시에 모든 싱글들이 꿈꾸는 인생 최대의 클라이맥스 로망이기에 번지점프정도야 감수할 수 있지만….
‘사랑의 기술’의 에릭 프롬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속도는 그 사람이 얼마만큼 외로움에 시달려 왔는지와 비례한다고 말했다.
그러하니, 멀디 먼 타국의 작은 K마을이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내는 극도의 외로움, 그로 인해 점점 낮아지는 유혹에 대한 극치점을 가지고 있는 서른이 넘은 싱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속도는 거의 빛의 속도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또한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고 했다. 길을 가다가 아무나하고 부딪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란 말이다. 게다가 사고인데, 홀아비건, 열두살짜리 띠동갑 연하이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 사랑이란 그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가끔 K마을의 호사다마에 귀를 귀울이다 보면, ‘교통사고’들이 어찌나 빈번한지, 그래서 외로우니까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첫눈에 반한 운명의 상대인 그가 늠름하고 용맹스러운 호랑이처럼 보이는 것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호피무늬 속옷을 입은 고양이로 변해 있을 때의 그 자괴감과 다시 밀려오는 외로움 또한 만만치 않다.
조금 더 시간을 들이고, 거리를 두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과오와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후유증으로, 소파에 수면제를 뿌려놓고 한 일주일만 죽은 듯이 쓰러져 버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어쩌면 한국의 자살률이 OECD 1위인 이유 중의 하나가 빈번한 사랑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일 것이라는 데에 한 표를 던진다.
삼순이가 다니던 버스정류장 전광판에 이렇게 써 있었던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내가 살고 있는 K마을의 어느 귀퉁이에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진중하라, 매번 사고나는 사람처럼…” 그러면 교통사고처럼 스펙태클하진 않겠지만, 파란 신호등처럼 안전하고 잔잔한 사랑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문선희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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