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야무진 한국여인 야물이’ <1>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이 이야기는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 어머니의 고향탈출을 시점으로 시작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어느 여름날 새벽, 어른들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시각. 야물이와 종규는 요꼬하마행(行) 연락선을 탔다. 그날 아침 열한 살 난 남동생 명구는 누나가 하와이로 이민 간다는 사실을 알고 뒤따르는 같은 회사의 배를 타고 요꼬하마항(港)으로 쫓아갔다. 간다는 말도 없이 몰래 떠나버린 누나가 원망스러웠지만 잘 가라고 전송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요꼬하마 항구에 내리자마자 명구는 온 힘을 다해 마구 달렸다. 달리면서 보니까 승객들은 벌써 하와이로 가는 배에 올라 있었다. 명구는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차고 입이 말랐다. 뛰는 가슴을 움켜쥐고 계속 뛰어갔다. 그러나 누나가 탄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맥이 빠진 명구는 울음이 터졌다. 명구는 보이지도 않는 누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무턱대고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하면 누나가 단 한 번이라도 자기가 내 젓는 손을 볼 테지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명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손을 흔드는 일뿐이었다.
자꾸만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그때 야물이는 얼마 안 떨어진 갑판 위에서 일본에 남아 대학을 다니기로 한 동생 종규를 향해 이별의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함께 집을 “탈주”한 오누이는 유별나게 사이가 좋았다. 야물이는 선상에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계속 손을 흔들었다. 퉁퉁 부어오른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려 내렸다.
동생의 얼굴이 아물거리며 점점 작아지다가 나중에는 사람의 형상과 해안선을 구분할 수 없게 될 때까지.
허나 야물이는 호놀룰루에 있다는 유명한 돌(Dole) 파인애플 공장에 취직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그 다음에 현지 한국인 누구와 결혼하리라는 꿈을 굳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처럼 사진신부*로 하와이까지 배를 같이 타고 온 가까운 친구가 주선해준 중매였다. 둘이는 정이 좋고 또 행선지도 비슷하여 서로 의지가 되고 자기들의 대담한 모험이 한편 신나기조차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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