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무진 한국여인 야물이’ <2>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야물이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박씨라는 한국이민 1세였다. 그는 누구였을까? 두 사람의
첫 상면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어떤 데서 기거를 했을까? 박씨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사
람이었나? 어머니가 임신을 할 때가지 파인애플 통조림공장에서 일을 하셨고 또 그 진한과일냄새에 민감해 하셨다는 건 아는데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게 나의 기억이다.
중국, 일본, 필리핀 등지에서 계약노동자로 온 최초 이민자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계약제로 온 사람들이 아니어서, 기회나 생각이 있으면 남들보다는 활동이 자유로웠다.
어머니와 박씨는 하와이 섬(빅 아일런드, Big Island)의 힐로(Hilo)市로 이사를 가서 “포이(하와이의 전통 토란 죽)”를 파는 어느 가게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구점이 하나 있었는데 박씨는 거기서 일을 했다. 첫 애(사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일 년 뒤에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다. 다시 2년 터울로 둘째 딸이 태어났다.
아내와 어린 여식이 둘인데도 아버지 되는 사람은 봉급을 술과 노름으로 다 날렸다. 둘째 딸의 출생 후 얼마 안 가서 두 사람은 곧 이혼을 했다. 어머니는 낯선 땅에서 두 살짜리와 갓 난 딸아기 하나를 데리고 위자료 한 푼 없이 홀로서기 신세가 된 것이다. 사회복지기금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거니와 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부지런한데다가 성격이 강인하시고 또 주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분이 나중에 우리 아버지가 되실 사람을 어머니에게 소개했다.
15세 연상인 그는 역시 한국인 으로 카포호(Kapoho)에서 힐로를 자주 왕래하며 양질의 채소를 파는 사람이었다. 첫 남편과는 정반대였다. 의타심도 없고 Model T 차까지 모는 부지런한 농부였다. 술도 노름도 모르는 그의 유일한 악습이라면 하루에 단 한 번 씩 담배를 손수 말아서 한 대 피우는 것이었다. 군살 없이 키가 크고 성실하며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는 과묵한 성품이었다. 나이는 42세. 어머니는 잘 생긴 사람을 좋아하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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