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닭장 바로 뒤 철길로부터 껄껄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마마 상, 아니, 하파이(임신) 육 개월인데 뭐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시우. 노 굳! 애들이 벌써 일곱 아니우. 열네 살, 열한 살, 여덟 살, 여섯 살, 네 살, 두 살. 그리고 업은 아기 또 하나. 애들 기르려면 돈 들구, 또 아줌마가 이제 젊은 나이두 아니잖우. 애들에, 닭에, 채소까지 돌봐야 하잖아요.” 껄껄 웃는 그 사람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일본계 중년부인이었다. 그녀는 김씨네 애들을, 위로 둘만 빼고는, 다 출산을 도와준 산모인데, 나무라는 어조로 엄마의 복부를 어루만졌다.
“이봐요, 마마 상, 나이가 벌써 사십인데 가진 돈 없이 일만 죽도록 하잖아요. 바깥양반은 제분소에서 오오하나(일)하구, 집에 오면 또 채소밭, 양계일로 계속 오오하나야.” 가지와 고추가 풍성하게 자라있는 채소밭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식지(食指)를 내저으며 그 아줌마는 이렇게 엄마를 타일렀다. “이제는 파우(그만이야)! 이 녀석은 내가 엄마를 생각해서 헤모(유산)시킬 거야. 이젠 그만 쉬어야지. 노 필리키아(pilikia). 고생 그만해요.”
어머니는 빈 양동이를 내려놓고 찾아온 친구를 얼싸 끌어안았다. “아냐, 아냐. 이 녀석은 좀 특이해. 느낌이 달라.
이놈은 마카나(makana: 선물)야. 특별한 마카나라구!” 어머니가 다소 부른 배를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그러는데 비둘기 한 떼가 머리 위로 후다닥 날아갔다. 산모는 갑자기 온몸에 한기를 느꼈다. “그래, 알았어. 마마상 애기 유산하지 말구 그냥 낳아요. 언제든 내가 필요하면 불러”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손 인사를 하고 옆집으로 갔다.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흔들면서. 칙칙폭폭 기차소리가 나더니 아버지가 당신의 고물차 Model T를 끌고 귀가하셨다.
아버지 차를 보고 학교에서 애들이 고물이라고 놀려대는 바람에 우린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차는 아버지가 카포호에 사는 한국친구한테서 평생 처음 큰 돈 들여 사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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