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에 다닐 때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속초로 가서 설악산을 보고, 낙산사와 그 일대에서 머물고, 강릉의 경포대를 본 후 양양으로 내려가 오색약수로 들어가서 약수를 마시며 강원도의 경치와 인심에 탄복했다.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길은 국도로 좁은 비포장 길이 많아서 진부령, 미시령 같은 높은 고개와 골짜기를 오르고 내려갈 때는 버스와 차들이 한 쪽에서 올라가는 동안에 반대편에서는 기다리고 있다가 그 다음에는 내려가는 차들만이 조심스럽게 한 줄로 가슴을 죄며 내려갔다.
그래도 우리가 탔던 시외버스는 골짜기를 내려가다가 언덕 비탈을 못 돌고 공중으로 곤두박질을 쳐서 앞바퀴가 공중에 뜬 채 벼랑에 걸려 승객들이 겨우 하나씩 문으로 빠져 나오는 사고를 치르고 그 일방통행 길이 막혀 더 험한 미시령을 넘어서 겨우 속초에 도착했다.
낙산사와 동해의 일출도 좋았지만 해변에 쳐진 군사용 철망 때문에 풍치를 망쳐 놓아서 안타까웠다. 양양에서 오색으로 가려고 택시를 합승해서 탔는데 냇물을 만나면 승객들은 차에서 내려 발로 냇물을 건넜다. 그래도 바위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받아 마시고 여관에서 약수로 지어 주는 새파란 밥에 산나물로 얼마나 맛있게 식사를 했는지 모른다.
또 두꺼운 광목으로 꿰맨 솜이불은 밤의 찬 공기를 푸근히 막아 주었다. 그곳 주민들은 부부들이 모터사이클로 여행들도 잘 다니고 누구와도 구수한 사투리로 별별 얘기를 다 하며 마음을 터놓아서 곧 친구가 되었다. 우리도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친해졌다. 그중에는 6.25 때 강이 핏물이 되어 흘렀다는 백마고지에서 싸운 분도 있어서 우리에게 실화를 들려주었다. 나는 이 여행에 대해서 감격 어린 추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 후 80년대에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오색까지 직통으로 가 보았지만 옛날 골짜기의 깊고 아늑한 맛은 다 없어지고 새로 지은 집들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관광객이 너무 많아 설악산의 등산길은 서울 한복판의 도로보다 사람이 많았다. 그 후로는 강원도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 평창에 초현대 시설을 모두 갖춘 올림픽 단지가 들어서고 동계 올림픽을 그곳에 유치한다는 소식을 TV에서 보고 놀랐다. 천혜의 자연과 입지 조건, 시설이 어울려 올림픽을 개최하기에 적격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알던 강원도와 비교할 때 격세지감을 느꼈지만 그곳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관광지로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제는 숨겨진 보물은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닌지.
그래도 우리의 보물을 전 세계에 알리고 주민들이 거기에서 수익금이라도 많이 얻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되어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기를 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자연의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과 인정이 넘치는 주민들의 환대가 너무 상업적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너무 현대적으로 단장된 자연과 획일적인 고급 호텔에서는 그 지방 특유의 문화와 인간을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화 되는 것이 우리 특유의 문화가 손실 되거나 관광 상품화 되어 고유의 가치를 읽어버리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유럽에 가 보면 천년 이상이 넘은 교회들과 오륙백년 이상 된 집들을 아직도 손질하고 복원하면서 현대적 설비로 편리하게 만들어 매일 매일 쓰면서 살고 있다. 우리도 과거의 우리 유산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와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지키면서 그것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겠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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