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야무진 한국여인 야물이’ <6>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아버지는 밭일에 필요해서 그 차의 측면에다가 목각을 단단히 붙들어 매어 가지고 뒤쪽 바닥공간을 넓혔다.
검정색 캔버스 세 조각에 아주까리기름을 발라서 볕에 말리고 또 말린 다음, 하나는 차 바닥에 깔고 두 개는 비 가림으로 쓰면서 여느 때는 말아 올리게 했다.
우리는 딴 애들이 보고 놀리지 못하게시리 측면 캔버스를 내리는 게 좋았는데 아버지는 그렇게 하면 무슨 장례차 같아 보인다고 안 좋아 하셨다. 아버지는 그날 어머니의 동생(우리 삼촌) 종규에게서 온 편지 한 통을 갖고 오셨다.
한국에서 편지가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하던 일 다 제쳐놓고 그 내용을 판독하는 데 시간을 보내셨다. 어머니는 가끔 박식한 이웃집 일본사람이나 8마일쯤 떨어진 힐로에 거주하는 한국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글을 해독하셨다.
우리 부모님 두 분은 다 정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수학문제에 아주 능하시고 어머니는 남동생의 편지를 꼭 판독하고야 말겠다는 의지 때문에 한글을 깨우치셨다.
어머니는 모국어뿐만 아니라 일어도 유창하게 잘 하셨다.
영어실력은 그저 그런 정도였으나 인종, 언어, 교육 및 사회적 위치가 다른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다. 인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신분이 다른 사람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신 점은 어머니의 강점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본계 이웃과는 일본말로, 반마일 가량 되는 곳에 살고 있는 하와이계 목장노동자와는 하와이 말로, 백인 신부님과는 한국어로, 그리고 하와이주를 대표하는 네네(Nene)새 보호자로 유명하며 마음이 넉넉한 집주인으로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주신 허버트 쉬프먼씨와는 피진 잉글리시(간소화된 혼성영어)로 대화를 하셨다.
석 달 뒤에 어머니는 아버지더러 산모를 불러오게 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까 산모가 이동식 목욕통에 물을 채워 넣고 있는 동안 이웃집의 미세스 코소라(Mrs. Kosora)는 마음을 달래는 어조로 어머니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세 분이 모여 있는 곳은 우리 집의 큰 침실이었다.
아버지도 옆에 계셨지만 실내출입은 금지였다. 들리는 건 어머니의 신음과 미세스 코소라의 침착한 말소리 뿐이었다.
우리는 옥외 테라스에서 있었는데 순이 언니가 와서 “쉿! 조용해”라고 타이르고는 영흥이를 안고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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