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아버지의 빈 쌈지는 수도꼭지에 부착시켜서 식수필터로 사용했다. 이윽고 이름 짓기를 계속했다. 아버지는 조용히 담배를 피우면서 소형 굴뚝처럼 코로 연기를 뿜었다. 아버지는 그날 일을 다 끝내고 목욕을 하시고 나서, 하루에 꼭 담배 한 대를 피우셨다.
”해리(Harry)라고 하자!“ 아버지가 별안간 선언을 하시는 바람에 우리는 어리둥절하였다. 아니 어디서 그런 이름을 생각해 내셨담. 아버지의 동료들도 이민 오신 분들이었는데 이름이 일본 아니면 필리핀 식이었다. 그해는 1939년, 책 방마다 해리 포터라는 이름도 진열되기 전이었다.
학교에 그런 이름을 가진 애는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싫어하는 애들 중에 해리라는 애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 해리라고 해요!“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하이 해리!“ 우리는 부드럽게 애기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어 그 이름이 좋다는 표시를 하고, 아버지는 기분도 좋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무도 아버지가 전에 어디서 이름을 들어 보셨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제 2장 양계사업
1926년에 부모님이 애 둘을 데리고 케에아우(Keeau) 집으로 이사 오셨을 적에는 실내공간이 아주 컸었다 (그 후에 우리가 하나씩 둘씩 태어나서 자식 수가 일곱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사정이 달라졌지만). 아마 그전에는 주위 환경이 특이해서 무슨 대농장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었을는지도 모른다.
집의 앞쪽과 철길에 인접한 20×30피트짜리 콩크리트 바닥 옆에 자리 잡은 사각형 콩크리트 물탱크 두 개 사이에는 대왕야자수 세 그루가 우뚝 솟아있었고, 또 시멘트 바닥 양 옆에는 빌딩 두 채가 물탱크보다 더 높이 버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저택” 뒤쪽엔 건물 두 개가 더 있었다.
그 하나는 여분의 빗물 저장용 건물이었고 또 하나는 아궁이가 달린 일본식 욕조였는데, 이런 게 다 우리 집의 일부였으니 말이다. 물탱크 두 개와 견고한 콩크리트 바닥과 주변 건물들은 다 한때 번성하던 비누공장의 잔여물이었다. 부지런하신 우리 부모님은 그 쓰지 않는 구조물들을 무슨 용도로든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곧 “저장“용 건물을 닭장으로 개조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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