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파인애플 그루
오후 7시부터는 등화관제(燈火管制)가 실시되었다. 창문과 틈새는 모두 검은 타르지(紙) 같은 걸로 덮었다. 밤이 되면 별과 달이 떠 있어도 집안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성인들은 누구나 신분증을 지니고 다니면서 자주 검문을 당했다. 어느 날 밤 우리 집 개들이 짖어대고 부엌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조심스레 내다보니까 군인 둘이 지프차에 아버지를 태우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깜박 신분증을 집에 두고 나가셨던 거다. 우리는 미친 듯이 집안을 뒤졌다.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낄낄거리면서. 두 군인은 매우 진지하고 임무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군인들은 아버지의 신분증을 보고 스파이가 아님을 확인한 다음에야 차에서 내리게 했다. 지프에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보고 우리는 기뻤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외출 시에 한 번도 신분증을 잊고 나가신 적이 없다. 등화관제가 실시된 뒤에 친구들이 묻기를, 너희 집은 왜 가끔씩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느냐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까 누가 집에 들어갈 적마다 문이 열리면서 등불이 밖으로 새나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등불관리를 더 잘했다.
우리 정글에는 여러 가지 사고도 발생했다. 한 번은 비행기가 추락해서 군인 네 명이 목숨을 잃었다. 몇 시간 뒤에 그들의 시체는 흰 천으로 싸서 무개화차에 실어 보냈다. 얼굴표정이 엄숙하면서 슬픈 군인들 서너 명이 도보로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전쟁과 죽음이 뭔지도 잘 모르고 말없이 바라다보기만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꽃이라고 몇 개 따서 무개화차에 올려놓았더라면 좋을 걸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죽은 군인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이가 우리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슬퍼하는 군인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것은 정말 우리 가슴을 찌르는 애절한 장면이었다. 그때 나이가 서너 살쯤밖에 안 되던 해리는 지금도 시신을 뒤따라가는 군인들의 슬픈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군인들 일개 소대가 파나에바 숲에서 야영을 하다가 길을 잃고 이틀 동안 헤매면서 철길 있는 데를 찾아가려고 애썼다.
그들은 장전한 총과 빈 물통을 메고 수마일 걸어서 간신히 우리 집에 이르렀다. 헐어빠진 집이었어도 그들에겐 아마 무슨 성곽처럼 보였으리라. 그 군인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헐레벌떡 우리 집으로 올라와 무기를 내려놓고 빈 물통을 부모님한테 내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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