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1943년은 우리에게 변화가 생긴 해였다. 어머니와 친한 스가와라씨네 딸들은 이미 라우할라 짜기 사업에 뛰어 든 입장에서 우리도 그 일을 하라고 권했다. 가공된 라우할라 잎으로 돈지갑, 바구니, 팔찌, 식탁매트 따위를 만든 물건이 잘 팔린다는 것이었다.
하와이 본고장 사람들과 군인들이 토종산물을 사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업에 가담했을 적에는 벌써 우리보다 앞선 경쟁자들이 많았다. 짜는 기구도 비밀이었다.
안내서도 없고 YMCA 학습반도, 직업학교 교습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건지, 어느 친구가 식탁매트와 라우할라 잎을 벗겨서 1/4, 1/2, 3/4인치 등 알맞은 규격으로 자르는 도구를 마련해주었다.
전에 쓰던 양계장은 (스케치 참조) 라우할라 잎을 짜는 작업장으로 개조하여 그 안에 잎 벗기는 기구와 휘발유동력을 이용하는 롤러가 여럿 달린 무거운 압축철기를 설치했다. 처음에는 우리 파나에바 숲에 들어가면 어디든지 널려있는 누런, 자연적으로 말린 라우할라 잎만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는 시행착오를 통해 그런 원료가 다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보다 질 좋은 재료는 길이가 5-6인치되는 잎으로, 벌레가 먹거나 잘 부스러지지 않고 유연한 것이었다.
그런 것은 쫙 펼치면 폭이 5인치나 되었다. 라우할라 잎 가장자리에는 가시가 나 있어서 그걸 제거해야 했다. 가시를 뗀 잎사귀는 코일처럼 돌돌 말아서 필요할 때까지 보관해 두었다.
그런 것을 철제 롤러로 압축시킨 다음 껍질을 벗기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재료가 되었다. 이것으로 식탁매트라든가 지갑, 바구니 따위를 만든 것이다.
우리 식구들 중에서 열 살 이상이면 누구나 직공(織工)이 되었다. 그 이하 또래는 손으로 롤러자루(손잡이)를 돌려서 마른 잎사귀들을 똬리뭉치(코일)로 만들었다. 손잡이는 라우할라 잎을 집어넣은 롤러에 부착된 거였다. 아무도 놀지 않고 일했다.
아무도 꾀를 부리거나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또 우리에게는 노동조합식 근무제도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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