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버지니아 공대 참사 사건 발생 1주일을 넘겼다. 악몽의 시간이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충격과 분노, 슬픔과 수치심도 어느 정도 삭아가고 있다. 우리의 분노는 범인 조승희가 NBC 텔레비전 방송국에 보낸 비디오와 사진, 메모를 접했을 때 고조에 달 했다. 텔레비전에 수 없이 방영된 ‘쌍권총의 사나이’는 그의 누나의 표현대로 평소의 조승희가 아니고 ‘알지 못하는’ 조승희 였다. 사전에 계획적 이었던 조군은 아침 7시 15분 기숙사에서 2명을 죽이고, 9시 45분 강의실에서 30명을 집단 학살하기 전에 여유만만하게도 우체국에 들러 이것을 방송국에 발송했다.
아직도 조승희의 범행동기가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동영상을 본 후의 판단은 일단 반사회적인 정신질환이 빚은 비극으로, 순교자적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그가, 불만으로 가득 찬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가닥이 잡혔다. 말하자면 병든 사회의 단면인 정신이상자를 학교가 방치한 점, 총기 규제문제, 캠퍼스 보안이 핵심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동안 추모식과 기도회 등 힐링(치유)과정을 거친 후 학생들은 캠퍼스로 다시 돌아갔다. 온통 버지니아 공대 참사 기사로 도배를 하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슬슬 다른 기사로 채워지고 있다.
우려했던 한인에 대한 보복성 혐오사건 이라든지 인종차별 등 불미스럽거나 부정적인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군의 부모가 동맥을 끊고 자살을 했다느니, 센터빌 조씨 집 앞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다느니, 자동차 도시인 미시간의 어느 학교 촌 주차장에 세워둔 10여 대의 현대 자동차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느니 등의 상서롭지 못한 일은 확인되지 않는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았다.
버지니아 충격이 우리들에게 컸던 이유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사건의 범인이 바로 한국사람 이라는 경악스러움 때문이다. 사건 초에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보도하던 언론이, 다시 차이니스라고 하다가, 나중에 사우스 코리안 으로 못을 박아 우리 가슴에 불안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다. 사건 발생 3일 째부터 언론은 일제히 ‘사우스 코리아’를 삭제했다. 사건의 본질이 아닌 인종과 국적의 명시가 불공정한 처사임을 인식한 듯 보도를 자제 했다. 그리고 미국 사회도 이 사건을 ‘South Korea’라는 국가로 부터 ‘Seung-hui, Cho’라는 미국서 자란 개인의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전적으로 옳은 일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조승희가 동족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그를 객관화 한다는 것이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한국정부의 조문 사절단 파견설이었고, 이태식 주미대사의 ‘단식’제의 였다. 냉정해야 할 정부 당국자부터 감정적 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진심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민간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김지하 시인은, “우리가 당신을 죽였다. 부디 용서하시라. 당신들 그 슬픔 앞에 무릎 꿇는다”와 같은 참사 추모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연대감과 체면문화에 젖어 있는 미주 동포 사회도 표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집단적 죄의식, 민족주의적 감정 차원에서는 본국의 정서와 다를 것이 없다. 요코 이야기에 대한 동포사회의 반응이나, 여중생 미순 효순양 장갑차 사망 사건 촛불 시위도 이와 같은 정서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굳이 한국과 미국의 문화와 민도를 비교해 본다면, 성숙한 사회와 미숙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한국 같으면, 내 자식 살려 내라고 땅치고 관(棺) 치고 난리를 쳤을 것이고, 내각 총사퇴하라고 핏대를 올렸을 텐데, 이 나라는 1주일 동안 조용히 치유기간을 갖고 원수도 사랑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캠퍼스에는 한때 조승희의 추모석도 마련되었다. 거기에도 사건 3일 째부터 꽃과 카드가 놓이기 시작 했다. “얼마나 힘들었니? 홀로 끔찍한 고통을 겪었던 네게 손 한번 내밀지 않았던 나를 용서 해 줘” 조승희도 병든 미국사회의 희생자라며 용서와 사랑을 보내줬다.
글로벌시대, 특히 미국과 한국은 한 지붕 한 가족과 같은 사이의 관계다. 이민 250만, 여행객 80만, 유학생 10만, 거기에 기러기 가족까지 합치면 엄청난 교류 규모다. 따라서 미국의 일이 바로 한국의 일이다. 버지니아 참사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각자 처한 사회와 간직한 문화. 개인의 삶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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