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新婦(순이)의 아버지
(첫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모습). 어머니가 종규삼촌의 슬픈 사연을 편지를 받아 읽고 또 읽으면서 깊은 시름에 빠져 우시던 걸 나는 기억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도, 명구 동생도 영영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 35년 전에 단 몇 분 차이로 생이별한 동생은 어머니의 귀향을 삼 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는 삼 년 차이로 그를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동생 종규와 다른 가족은 살아 있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여동생, 사촌들, 조카들 ... 이는 어머니가 고향방문을 손꼽아 기다리는 까닭이었다. 어머니는 몇 주 동안 계속 고향에 갖고 갈 선물을 사서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일 으뜸가는 선물 중의 선물은 종규 외삼촌에게 줄 검정색 신사복. 주문해서 맞춘 것이었다. 삼촌 같은 행가에게 어울리는 그런 옷이었다.
삼촌은 <오사까 제국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최우등생으로 1930년 졸업식에서는 고별사를 읽었다.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도 일본에서 다녔는데, 외할아버지도 나중에 가서는 최고의 교육을 추구하는 아들의 욕구를 받아들였다. 종규삼촌이 최우등으로 졸업했다는 사실은 고국에서 큰 뉴스거리였다. 은행으로 다시 옮겨가기 전에 외삼촌은 한국정부의 상공부차관을 지냈다.
어머니가 타신 배는 호놀룰루와 동경에 한 번씩 들렸다가 부산항에 도착했다. 마중나온 가족들은 아이구, 아이구! 큰 소리로 울면서 어머니를 환영했다. 맨 먼저 대면을 한 사람이 종규 외삼촌, 그 다음 외할머니, 조카와 사촌들, 그리고 다른 인척들 순이었다. 어머니는 외삼촌내외의 주빈이었다. 그들의 중상급 주택은 아름다웠다. 그 당시로 3년 전 어느 겨울, 외삼촌은 참변을 당했다.
어여쁜 외삼촌댁과 큰 딸, 큰 아들, 식모 네 사람이 타고 있던 페리선이 과적으로 그만 전복되어서 남해 찬 바닷물에 익사하고 만 것이다. 외삼촌은 남은 딸 하나와 두 아들을 위로하며 시름을 달랬다 그러다가 일 년 뒤에 재혼했다. 자식들은, 특히 아들은 아버지와 새 엄마가 잘 돌봐주는 가운데 적응을 잘 해나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재혼한 부인의 전 남편도 같은 배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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