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을 발표한 폴 월포위츠 세계은행 총재와 특혜시비를 불러온 그의 여자친구 샤하 리자.
‘로맨스’때문에 낙마한 네오콘의 핵심
여자 친구 승진 및 월급인상 특혜 시비 끝에 결국 세계은행 총재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폴 월포위츠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이끌어온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이라크 전쟁을 기획하고, 중동 민주화에 대한 미국의 압력을 배후에서 주도해온 그는 지난 2005년 세계은행 총재 지명 때부터 논란의 대상이었으며 결국 역대 세계은행 총재 중 처음으로 중도사퇴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폴란드계 유대인 출신인 그는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코넬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줄곧 공직과 학교에서 몸담아왔다.
지난 1980년대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재직시절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축출과 필리핀 민주화 과정에 핵심역할을 했고, 1989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으로 일하면서 냉전종식 후 미국의 군사정책 재정립 작업을 주도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에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권좌에 남겨둔 채 전쟁을 끝내려 하자 이를 강력히 반대했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엔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 학장을 6년간 역임했고,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 부장관에 임명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5년간 보좌했다.
2001년 국방부 부장관 재직 당시 9.11테러가 발생하자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침공을 제안하며 “이라크에서 미군이 해방군으로 환영받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테러예방을 위한 `선제공격론’을 창안했다.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하면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부패한 개발도상국에는 세계은행의 지원을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집행, 현실감각이 부족한 이상론적인 정책으로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더욱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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