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요녕성 대련시를 자주 왕래하는 김수광씨가 “조선족학교가 미주 한인 동포들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특별한 관심을 촉구했다.
3-4년 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여러 가지 봉사(?)를 하고 있다는 김씨가 알게 된 ‘대련시조선족학교’는 한 조선족을 통해서였다. 중국군 통역장교를 지내면서 한일합방, 한국전, 중국 문화혁명, 중국-인도 분쟁 등 한반도와 중국 주변의 격동의 세월들을 그 중심에서 경험하며 중국내 조선족의 민족교육에 관심이 컸던 그는 김수광씨에게 “미주한인동포들이 조선족학교를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바램을 피력했다.
대련시조선족학교가 설립된 것은 1946년. 당시 김구 선생과 독립 투쟁을 하던 이화림이라는 애국단 여성이 중국 돈으로 5만원의 장학금을 내놓았다. 본명이 이춘실인 이화림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의 생일을 기념하는 천장절 행사에서 거사를 벌일 때 도움을 준 사람이다. 흔히 윤봉길이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인의 도움을 받아 삼엄한 검문검색을 통과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는 양장을 한 27살의 조선 여인이었다.
테러만으로는 조국의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에 법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민족혁명당에 가입해 조선의용대 대원으로 활동하며 생사를 가르는 전투를 치르는 등 평생을 항일 전사로 보낸 그는 8.15 해방 후 하얼빈에서 의사로 일하는 등 여러 공직을 거치다가 은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5만원도 큰 돈은 아닌데 지금은 더 줄어 장학금 지급이 쉽지 않게 됐다”며 “한족이 운영하는 학교로 학생이 빠져 나가고 이농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조선족의 민족 교육은 더욱 어려움을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이주 초기부터 단순한 교육뿐 아니라 조선족공동체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온 조선족학교는 그러나 쇠퇴 일로에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데 80년대 중국의 개방과 90년대 한국과의 수교로 이농 현상이 급격히 증가한 것도 큰 원인이다.
지난해 설립 60주년 행사를 크게 가진 대련시조선족학교는 200여명의 학생들이 재학해 있으며 조선족 인구는 5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공동체를 살리고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한다는 점에서 중국 조선족의 민족교육은 너무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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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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